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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선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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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먼 선진의 길
  • 전민일보
  • 승인 2019.09.1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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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기다렸던 화창한 봄을 좌절과 분노 속에 보냈다.

공원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서 치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는 본래 이러고 살았는데 뭘...

누구는 육장 버리는데, 나만 주우면 뭐하나. 끝없는 무기력에 빠졌다. 여름이라고 하등 달라질 게 없다.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이젠 포기했다. 울컥울컥 치미는 분노는 나의 건강을 좀먹게 할 뿐이다. 나 혼자만이라도 감정을 추스러야 한다. 이제 기대수준을 낮추자. 잘 산다고 으스댔던 게 후회스럽다. 남들은 우리를 보고 코웃음을 쳤는데,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거들먹거렸던가.

금방 아시아의 강국, 세계의 선진국이 될 것처럼 나댔지.

뻑 하면 OECD 평균이 어쩌네 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했다.

'그 녀석들 때문에' '그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하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안전 불감증과 빨리 빨리 증후군 탓이다. 이래서는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길섶에 핀 연분홍빛 나팔꽃이 나를 달래준다. 세상의 일은 또 지나갈 것이지만, 잊지는 말라고.

대충 생략하고 넘어가지 말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매뉴얼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중요하다.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해두어야 한다. 중국 사천성 지진 때 어느 학교 교장선생님이 비상대피훈련을 실제와 같이 여러 번 했더니 한 학생의 희생자도 없이 재난을 극복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어떻게 되겠지해서는 안 된다. 한두 번은 넘어간다 하더라도 일은 기어이 터진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OECD 국가와 비교하지 말자. 우리나라는 1996년 29번째로 OECD에 가입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금방 선진국이 될 것처럼 떠들어댔다. 경제지표는 OECD 가입국 중 몇 위, 가입국가 평균보다 많은 수치를 제시하며 정부의 업적을 내세웠다. 배웠다는 사람치고 OECD를 들먹거리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OECD의 마법에 걸린 탓이다.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 음주, 암 사망률 등의 수치가 높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숫자놀음에 빠져 울고 웃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겠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살고 있다. 잘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말이다.

반세기 만에 민주화와 경제 발전의 두마리 토끼를 잡은 유일한 나라라고 찬사를 퍼붓는다.

우쭐댈 것도 없고, 손가락질하며 무시한다고 펄쩍 뛸 일도 아니다. 우리는 남의 평가에 너무 관심을 기울여왔다. 나 스스로 자존감을 느끼면 된다. 그냥 천천히 선진을 향하여 나가면 될 것이다. 선진국이 되지 못하면 바로 후진국으로 되들아 갈 것 같은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또 중진국이면 어떻고 개발도상국으로 후퇴하면 어쩔 텐가. 중국보다 낫고 일본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차라리 돈보다 마음이 선진국이었으면 좋겠다. 문화가, 예술이, 시민의식이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졸부 소리 듣는 것보다 청빈이 나을 수도 있다.

어느 기자가 워싱턴 공항에서 한국 초등학교 100여 명을 만났다. 영어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온 아이들은 앞으로 몰려나와 입국심사를 빨리 해달라고 요구했다.

공항의 입국 심사대는 시장처럼 복잡했고, 한국 어린이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 입국 심사가 지체되어 불평이 많았다.

어린이를 내세우며 중간에 끼어드는 수십 명의 한국인 가족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입국십사에서 우선한다는 관행을 악용한 지능형 새치기였다.

서울대 권혁주 교수는 여론조사를 토대로 제도 개혁보다는 정치개혁, 국민의식개혁과 같은 국정 운영의 소프트웨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가장 큰 딜레마는 적 차원의 미래 비전과 과제가 설정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경종을 울렸다.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우리 사회를 둘러보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힘차게 매진했으면 한다. 선진국이 된 자랑스러운 조국의 모습을 살아 생전에 바라볼 수 있을까?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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