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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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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겨울나기
  • 전민일보
  • 승인 2018.12.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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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아직도 여기저기서 막바지 김장으로 한창이다. 사실 김장은 월동준비의 핵심으로 옛 조상들은 김장을 마치면 겨울을 날 준비를 마쳤다고 할 정도 였다. 겨울이 되면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고 얼어붙어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겨우내 밥상을 책임져 줄 김치는 그야말로 보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입동 전에는 꼭 김장을 마쳐야 한다는 ‘입동김장’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 입동이 한 달 가까이 지나가고 있는데 김장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한없이 너그럽기만 한 것 같다. 월동준비가 예전만큼 대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날씨가 춥지 않아 아직 농작물이 얼어붙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굳이 김장 김치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넘치는 환경이 겨울나기를 덜 치열하게 만들었으리라.

더 손쉽고 편해진 겨울나기, 하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겨울나기에 숨겨진 조상들의 정신 또한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가족 먹을 것 챙기기에도 바빴을 우리 조상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날짐승들과 마을의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더불어 무사히 겨울을 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겨울나기의 백미(白眉)에는 까치밥과 고수레가 있다. 까치밥은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서너 개의 감을 남겨놓는 것을 말한다. 단 한 개의 감도 아쉬웠을 때에 까치의 생명까지 소중히 여겼던 마음은, 김남주 시인이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찬서리/ 나무 끝에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할 만큼 조상들의 정감 넘치는 겨울나기 방식이었다.

고수레 역시 겨울의 한 절기인 동지의 대표적 풍습이다. 고수레는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조금 떼어 주어 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동지에는 대문이나 장독에 팥죽을 뿌려 두어 겨울에 먹을 것이 모자라는 날짐승들에게 조금씩이나마 팥죽을 나누어 주려는 배려의 마음을 담고 있는 풍습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치계미라는 것이 있다. 입동이 되면 마을 노인들이 겨울을 지낼 쌀을 모으는 풍속으로 동네의 큰 부자나 대갓집에서는 물론, 논밭 한 뙈기 없는 소작농, 노비까지도 꼭 쌀을 조금씩 모아 냈다고 한다. 동네의 가난한 어르신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쌀을 모으던 그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군가는 치계미를 ‘조선시대판 구세군 냄비’로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이러한 조상들의‘더불어 사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겨울이면 딸랑딸랑 종을 울리며 모금하던 구세군 냄비는 어느새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그 모금액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또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의 힘들고 어려운 참상의 뉴스도 겨울이면 심심찮게 들려온다.

겨울은 매년 점점 더 포근해지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점점 더 풍족해져만 가는데 세상의 인심은 더욱 살벌하고 냉정해지기만 하고, 나와 내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이웃 간에는 칼바람마저 느껴진다. 몸은 예전만큼 춥지 않은데, 마음은 춥다 못해 오한 감기에 걸려 떨리는 것만 같다.

옛 것이 아무리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촌스러움이 있다고 하지만, 마을 어르신과 날짐승까지도 챙기며 겨울을 함께 나던 그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까지도 외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의 훌륭함이 더욱 잘 이어져 나갈때 새로운 우리 문화가 더욱 올곧게 발전하는 법인데, 이 지켜 이어갈만한 훌륭한 것 중의 하나는 분명 조상들의 더불어 사는 마음일 것이다.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 추위로부터 여유로워진만큼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추위와 냉대에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이 있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지켜온 겨울나기의 전통, 까치밥과 치계미의 마음가짐을 이어나가는 기회를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어느 해보다도 더욱 따뜻하고 행복한 “더불어 겨울나기”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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