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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로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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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로운 곳에서
  • 전민일보
  • 승인 2018.08.10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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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삼백년 이상 되는 아름드리 적송(赤松)이 우뚝 우뚝 서있는 송림에서 한나절의 휴가를 보냈다. 위풍당당한 자태로 푸른 솔을 가지에 늘어뜨리고 있는 적송의 향기에 취하여 송림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다가 누각 하나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넓은 마루가 있는 숲속의 도서관이었다.

누각 한쪽엔 교양 인문학 도서에서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까지 빼곡히 꽂혀있는 서가가 있었고 책을 무료로 대출해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숲속의 도서관에서 한나절의 휴식시간을 가지리라 생각하며 서가를 둘러보았다.

몇 해 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산문집 ‘맑고 향기롭게’를 뽑아들고 누각마루에 앉았다. 사방으로 솔바람이 불어드는 누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법정스님의 맑게 정제된 법문 같은 수행록을 읽는 행복을 무엇에 비할까?

법정스님은 책의 서두에서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아시시의 성자를 이 누각에 초청하여 이기와 허영으로 치장한 내게 가슴 따끔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선물해주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로 시작되는 ‘평화의 기도’는 바로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신앙 고백 시(詩)다.

이어서 스님은 어느 화전민이 버리고 간 산속의 토담집에서 기거하며 수도하는 모습을 소개했는데 마루에서부터 부엌, 화장실까지 안내하며 보여주었다.

스님의 선방(禪房)은 정랑 또는 해우소라 부르는 화장실까지 스님이 기거하는 모든 장소가 선방(禪房)아닌 곳이 없었다.

등산객을 비롯하여 높은 산중까지 올라온 사람들이 복(腹)중의 근심거리가 생긴 경우 해결하고 갈 수 있도록 화장실만은 제대로 건축하였다 했다.

아무런 치장과 장식이 없는 정갈한 방에서 맑은 녹차 한 잔 대접받으며 바람소리, 새소리, 꽃향기와 더불어 고요한 침묵이 주는 참된 평화와 행복에 대하여 스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이윽고 스님은 책의 말미에서 한포기의 난(蘭)에도 애착을 가지면 수행에 걸림돌이 될 까하여 난 기르는 일도 마다했다하며 비움의 도(道)를 극명하게 설(說)하여 까무룩 오수에 빠져 들려하는 나의 정신을 반짝 들게 해주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을 다 읽고 서가의 제자리에 책을 꽂아두고 누각의 섬돌을 내려왔다.

그리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 깍지를 끼고 심호흡을 했다. 맑고 향기로운 송림의 정기가 가슴 가득 채워진다.

이 송림은 삼백여년전인 조선 영조시대에 하동 도호부사가 섬진강의 치수(治水)를 위하여 조성한 숲이라 한다. 3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니 나무둘레를 안아보면 품안에 넘치는 거목들이다.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살균력이 강하여 폐 기능을 강화시켜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니 한나절의 휴가를 정말 맑고 향기롭게 보낸듯하여 정녕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다.

송림을 벗어나 섬진강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 백사장이 명사십리로 펼쳐져 있고 강물에는 윤슬이 반짝거리며 백사청송(白沙靑松)의 풍광을 찬미하고 있었다.

모래톱엔 하얀 물떼새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다가 은물결이 몰려들자 나래를 활짝 펴고 휘돌아 감도는 강심위에서 멋진 군무를 연출하고 있었다.

은어와 쉬리도 맑은 강물 속에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synchronized swimming)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말하면 모래틈새의 재첩들이 온 몸을 구르며 웃었을 까?

누군가 나에게 지난 여름휴가는 어디로 다녀오셨어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맑고 향기로운 곳에 다녀왔어요. 삼백여년 전부터 예비되어 청아한 솔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랍니다. 언젠가 다녀온 시드니의 유칼립투스 숲이나 서태후 여름별장 이화원 등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소현숙 전북도 여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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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18-08-10 15:36:57
한 편의 개행문이군요. 누구든 솔숲에 들면 마음이 평안해지지요. 더욱이 요즘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부리는 날이면 산숲이 그리워진답니다. 숲은 우리의 정서를 맑고 밝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숲을 가꾸고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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