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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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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백
  • 전민일보
  • 승인 2018.04.18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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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강의가 없다. 11시 40분에 예배가 있지만, 집을 일찍 나섰다. 이제 끝물에 이른 벚꽃 뒤태를 천천히 눈여겨볼 심산으로. 학교까지 가는 길옆 곳곳에 벚꽃이 수북하다.

어느 곳엔 수양벚꽃이 가지를 날씬하게 늘어뜨리고 바람에 하늘거린다. 바람 떼가 벚꽃에 들이닥치자 꽃비가 분분하게 내린다. 落落花花, 꽃이 모여서 지니 자태가 한결 고고하다.

낙하가 주는 고상함은 꽃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처마를 흘러내리는 빗물은 겹치지 않은 선율의 음악이다. 허공 같은 유리창을 타고 내린 빗방울은 기억에서 사라진 이름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이다. 얼마 전 4월에 화끈하게 눈이 내렸다.

4월에 내린 눈은 꽃을 함초롬히 덮고 봄을 품었다. 이후 주춤했던 초록은 더 진해졌고 새싹은 더 실해졌다.

길을 가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꽃길이 끝난다. 얼마 전 어느 지인이 카톡으로 엽서를 보냈다. 꽃이 환하게 핀 길에 꽃이 떨어져 눈부신 그림이었다. 그림 아래 “그대가 가는 길은 항상 꽃길이면 좋겠습니다.”란 문장이 낯익었다. 각박하고 살벌한 인생의 여정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평탄하길 간절하게 바란 것이리라. 우리는 희망을 도배하며 산다. 도배한 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온기로 삼는다.

꽃길이 끝난 곳에 상관저수지가 누워있다. 요즘 제법 많이 내린 비를 허투루 흘러버리지 않고 일일이 안고 있어 품이 버거워 보인다.

저수지는 바람이 찾아온 방향에 따라 수시로 표정을 바꾼다. 제 얼굴 주름을 크게 접었다 펴기도 하고, 자잘하게 접었다 말기도 한다. 그 표정을 보면 바람이 허공에 낸 길과 바람이 신은 신발 문수를 가늠할 수 있다.

마른 억새는 지난겨울부터 한자리에서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제 몸에 있는 수분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면, 겨울을 넘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말라서 더 빛난다. 우리 살다 보면 아파서 여위고 차디찬 고통때문에 메마른 날 있다.

아프고 힘들다고 그저 그렇게 메말라 바람에 날릴 수 없다. 마른 억새처럼 꼿꼿하게 서서 깊어지는 물 바라봐야 한다.

마른 억새처럼 당당히 서서 싱싱한 봄 기다려야 한다. 살아갈 날이 너무 장장 하므로.

수양 버드나무가 물속에 발을 딛고 쉬고 있다. 봄을 따라온 것인지, 물을 따라 흐른 것인지 가지마다 초록이 마을을 이뤘다. 모여 살면 풍경이다. 한 덩어리가 되어 누군가 생을 툭 건드려주는 힘이 된다. 꽃도 마을을 떠나 피면 외롭다.

새도 마찬가지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아득한 허공을 맞닥뜨려 아찔하다. 우리는 지금 마을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마음의 풍경을 집요하게 잊고 산다.

학교 주차장에 이르렀다. 식당 뒤쪽에 위치한 한갓진 곳이다. 요즘 담쟁이덩굴이 벽화를 그리느라 분주하다. 아침 햇살이 벽을 꽉 채운 곳은 이미 초록이 넘쳐 풍성하다.

단지 벽에 불과했던 허공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있다.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봄이다. 혹한이 물러간 자리에 꽃이 피었다 하여 봄이라고 하고 말기엔, 우리 생애가 너무 궁색하지 않으냐. 열정이 식어가는 힘을 되살리고,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직 양지가 되지 않는 곳에서 떨고 있는 생명이 없는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마음으로 맞는 봄이 진정한 봄날이다.

부산에 사는 친구가 유기농 두유를 보냈다. 밥을 씹지 못하는 훈용이와 팔순이 넘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넉넉하게 보냈다.

어머니께서 도시락 가방에 두 개를 넣으셨다. 주차장에 있는 모 교수님 차에 하나를 놓았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셔서 눈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순간 내 맘에 봄이 발동했다.

봄은 우리가 마음으로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온기가 될 수 있고 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냥 줘야 마음이 편해지고, 별것 아니지만 기쁘게 받아주는 것이 봄볕 아니겠냐.

주차장에서 연구동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들이 직립해 있다. 이들은 봄을 제 몸속 깊이 끌어들여 크고 작은 옹이를 박았다.

옹이에 잠들지 않은 생각을 걸고 바람의 무게로 흔들렸다. 길이든 나무든 생각이 머물지 않으면 폐가처럼 된다. 관심이 풍경이고 생각이 흔적이다. 빈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의 숨결이 한결 고르다. 그들에게 안녕을 물었다.

봄은 따뜻하게 보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마음이다.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다. 응시의 길이를 늘이고 폭을 넓게 해야 대상과 거리를 친근하게 좁힐 수 있다.

고덕산이 연둣빛으로 시나브로 물들고 있다. 새들의 비행이 다정다감하다. 이곳저곳에서 나뭇잎 트는 소리로 봄빛 일색이다. 마음의 여백에 체온 상승한 햇볕이 눈처럼 쌓인다. 봄은 산 넘고 물 건너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에서 온다.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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