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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18.04.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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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를 마쳤다. 날씨가 풀어지자 몸 곳곳에 잠자고 있던 피로가 야금야금 기어 나왔다.

예전 같지 않게 요즘 피로와 쉽게 친구가 된다. 오후에 있는‘반려동물과 생명공동체’과목은 다섯 교수가 공동으로 강의한다.

오늘 강의는 원래 내가 해야 하는데, 모 교수님께서 먼저 하신다고 하셨다. 틈이나 오후에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예약했다.

“힘든 시기에 교수님의 글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교수님께서 이번에 시집을 출간하셨던데. 어떤 경로로 살 수 있는지요?”

김해에 사는 독자에게 문자를 받았다. 시집과 수필집 속지에 그분 이름을 곱게 썼다.

그 아래 날짜와 내 이름을 쓴 다음 낙관을 찍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분명 눈빛이 화창한 분일 것이다. 가슴은 온화하고 귀는 맑을 것이다.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영혼이 청명할 테니까. 귀갓길에 우체국에 들렀다.

택배를 담당하는 여직원이 자주 뵌다고 하면서 꽃처럼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틀이 멀다고 우체국깨나 들락거렸다. 부족한 책을 많은 사람이 사랑으로 응원해 주고 있다.

책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봐 포장용 에어캡으로 정성스럽게 쌌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 생소한 주소를 힘주어 눌러 썼다.

아직 김해를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김해라는 이름은 오래 사귄 지인처럼 친근했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그분 때문이리라. 포장한 책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잠시 후 계좌번호를 물으셨다. 순간 고민했다.

사실 책을 그냥 주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주위에서 책을 그냥 주면 아예 읽지 않는다고 더 닦달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값보다 적은 금액을 적어 보냈다. 택배비도 내가 부담했다.

“교수님! 책값과 소정의 금액을 함께 부쳤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적지만, 함께 보냅니다. 늘 건강하세요. 샬롬!”

이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또 빚을 졌다. 난 겨우 되도 채우지 못하고 주었는데, 말을 고봉으로 채워서 받았으니. 모 교수님께서 오는 목요일 문학 특강때 내 책을 학생들에게 팔았으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불쑥 모 학생이 떠올랐다. 경제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충분히 도움을 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책을 팔아 도움을 더 줄까 고민하다 생각을 그만 똘똘 말았다.

시집 한 권 값이 어떤 학생에게는 몇 개월 밀린 공과금과 같기 때문이다. 답 글을 보냈다.

“네, 고맙습니다. 좋은 만남, 소중하게 잇고 싶습니다.”

오후 진료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렀다. 환자 가운데 9할이 연로한 어르신이었다.

우리 몸에서 자라는 통증의 뿌리는 무엇일까? 평생 꼿꼿한 삶을 살 겨를 없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허리는 통증이 모여 사는 집이다.

통증 공법으로 지은 집을 나는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을 별로 원망하지 않았다. 글을 쓰며 살림을 축내는 아들이지만, 부모님은 내 독자가 든든하게 되어 주셨다.

내 책이 나오면 아버지와 어머니 돋보기가 밤낮으로 코에 걸려 있다.

책값도 꽤 많이 쳐 주신다. 아내는 내가 창작하는데 신경이 거슬릴까 봐 내가 쓴 글에 대해 단 한 번도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을 담보로 잡혀서라도 글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냥 했을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말이라고 울타리 치고 싶지 않다. 큰아들은 이제 시집을 내면 잘 팔리느냐는 질문 따위를 하지 않는다.

나는 아프지 않으려고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온몸에 통증이 곰팡이처럼 자란다. 내 안에 있는 아픔을 글을 통해 밖으로 내쫓아야 숨을 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앓고 있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려고 한다. 누군가 앓는 아픔을 대신 앓아주지 못해 아프기도 하다. 정원에 있는 백목련이 하얀 문장을 일필휘지하고 있다. 저 문장을 출산하기 위해 얼마나 하얗게 아팠을까.

백목련 둘레가 환하게 밝다. 꽃이 눈부시게 빛난 것은 온몸으로 킁킁 앓은 고통 덕분이다. 꽃은 그림자도 향기롭다.

그 향기를 분양하지 않아도 벌은 융자를 끼면서까지 줄을 서려고 한다. 꽃과 벌 사이 거리가 냉기 한점 없이 따뜻하다. 고단함과 간절함까지 부연 설명없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 안에 있는 아픔을 어떤 꽃으로 피워내야 할까.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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