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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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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
  • 전민일보
  • 승인 2015.05.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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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우리 마을에 묵방산(539미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어 둔 화심소류지가 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국약천을 따라 마을 앞을 가로 지른다. 예전에 벼농사를 지을 때는 농업용수로 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벼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어 농업용으로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우리 지역에 있는 하천이 비가 오면 물이 흘렀다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르는 건천이 많은지라 이 소류지는 우리 마을 생태보고이다. 민물새우가 많아 수달이 살고 있고 겨울에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철새가 날아들어 숨비소리를 내며 물길질을 해댄다.

봄이면 묵방산에 핀 산 벚꽃이나 산 복숭아꽃을 제 몸에 새겨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고 여름이면 물 수양버들에 초록을 더해 준다. 가을에는 묵방산 단풍을 제 몸에 받아들여 활활 불타오르고 겨울에는 제 몸을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수문처럼 마음의 문을 여닫기도 한다. 우리 마을은 상당히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어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하다. 그래서 새벽에 소류지에서 끓어오른 안개가 국약천을 따라 머리를 길게 풀어 헤치고 마실 나서는 일이 흔하다.

7년 전 귀촌했을 때 소류지 주변이 낚시꾼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너무 지저분하였다. 마을주민에게 우리 마을 환경과 생태자원을 보존하자는 취지를 설명하고 “마을환경규례”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류지 주변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낚시를 금지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나 새우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나 낚시꾼들이 버린 쓰레기가 줄어들기는 커녕 날로 늘어만 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른 아침에 소류지를 거쳐 묵방산 밑에 있는 원각사까지 산책을 한다. 이 때 새우를 잡으러 온 사람이나 낚시꾼을 만나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이 때마다 그들은 자신이 가져온 것은 버리지 않고 되가져간다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지만 눈을 피해 버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일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낚시할 만한 곳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못쓰게 된 낚시 도구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것은 예사이고 용변까지 보고 가기도 한다. 소류지 주변에만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오가며 길에다 담배꽁초나 음료수 캔, 종이컵을 버리기도 한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원각사 입구 주차장에 자리를 잡고 취사하는 한 무리 낚시꾼을 만났다. 밤낚시를 하여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술잔을 주고 받는 모습이 화기애애하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을 주민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쓰레기를 되가져 가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차량번호를 촬영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과거 이런 일이 있으면 대다수 사람이 불쾌하게 여기며 무슨 권한으로 차량번호를 찍느냐면서 항의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쓰레기봉투까지 내보이며 순순하게 사진촬영을 허락했다. 그러면서 양심이 불량한 낚시꾼들 때문에 자신들도 도매금으로 지탄받는다고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낚시꾼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문제가 심각하자 낚시면허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많다. 현재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낚시를 하려면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고 면허증을 구입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 국가는 면허료와 기타 수익금으로 낚시감시원을 고용하고 저수지 주변을 청소하거나 관리하는데 쓰고 있다. 일본은 낚시면허제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일본낚시진흥회가 주축이 되어 낚시터를 유지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개인이 가진 양심만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한다 할지라도 시민 개개인이 양심을 내팽개치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을 것이다. 낚시꾼은 물속에서 고기를 잡아 올리기 전에 양심을 먼저 낚아야 한다. 어차피 삶을 낚시하며 사는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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