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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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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민들레
  • 전민일보
  • 승인 2015.04.22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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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올 듯 말 듯 뜸을 들이던 봄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다. 봄은 우선 노랑걸음으로 아장아장 온다. 눈 속을 뚫고 올라온 복수초를 시작으로 담 밑에 웅크리고 있던 영춘화가 제 얼굴을 노랗게 화장한다.

잠시 후 개나리로 옮겨 붙은 노란 꽃물은 덧니에 속살까지 물들이고 장작불 가마솥처럼 노랗게 팔팔 끓는다. 개나리가 노랑을 절정으로 토해낼 즈음 복숭아 뼈보다 낮은 자세로 핀 민들레가 노랑 창문을 열어 젖힌다.

민들레는 보통 흰 민들레와 노란 민들레가 있다. 흰 민들레는 토종으로 약성이 강해 사람들이 선호하지만 야생에서는 개체수가 노란 민들레에 비해 아주 적다. 노란 민들레는 국산과 외래종이 있는데 대개 외래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곡물이나 사료를 수입하여 하역한 것을 사료공장까지 운송하는 과정에서 멋모르고 친구따라 강남까지 온 민들레 씨앗이 주변 도로에 날려 터주막 행세를 하고 있다.

민들레에 일편단심이란 말을 붙인 것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민들레 뿌리는 곧게 내리뻗는다. 옆으로 뻗은 가느다란 실뿌리는 아주 빈약하여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고 중심뿌리가 크고 실하다. 그래서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절개를 지킨다하여 일편단심이란 말을 붙였다.

또 다른 설은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나왔다. 생물학적으로 개체수가 적은 것은 개체수가 많은 것으로 인해 쇠락하거나 사멸하기 마련이다. 즉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가 개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불리면 토종인 흰 민들레는 멸종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흰 민들레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제 생명을 처절하게 유지한다.

선거철만 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 활개를 치는 나라. 자신이 가진 정치적 신념을 죽음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사육신을 다시는 볼 수 없는 나라.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종교적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나라.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게 아니라 강한 자에게는 나약하고 약한 자에게 힘을 쓰는 나라.

사드라는 미사일 방어체계와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가입을 두고 미국과 중국 눈치를 봐야하는 나라. 이 나라에서 지금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기지개를 펴며 피고 있다.

일본은 툭하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우겨왔다. 이제는 아예 우리가 불법으로 점유했다며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일본 땅이라고 턱하니 못을 박아버렸다. 중국은 마라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긴 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손쓰고 있는 것은 당사국 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시하는 수준이다.

조선시대 같으면 국가에 대한 일편단심 때문에 비분강개하여 할복하는 선비가 한 두 사람 정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인이나 나라꼴만 이러랴. 군인은 일편단심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 더욱이 별을 단 장군은 올바른 국가관과 군인정신을 일편단심으로 가져야 한다.

그런데 군에서 복무하면서 얻은 기밀로 방산비리를 저질러 막대한 국고를 털어낸 국도(國盜)가 한두 명이 아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고 도둑에게 금고 열쇠를 내 준 격이다.

이 봄날,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풀잎 같은 민초는 봄이 왔지만 여전히 허기지고 고달프다. 다른 사람 것 탐낼 줄 모르고 일편단심 제 것 가지고 먹고 제것이 없으면 냉수 한 사발 마시고 풀잎처럼 풀풀 일어섰다. 비록 힘없고 배경이 없을지라도 허접스럽게 실뿌리 뻗지 않고 척박한 땅에 심지를 바로 뻗고 살아왔다.

외래종이 개체수를 늘려가도 전혀 굴하지 않고 정체성을 잃지 않는 토종 민들레처럼 외세압력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일편단심 하얀 꽃을 피어왔다. 이제 이 하얀 꽃을 피울 자 누구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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