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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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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은행나무
  • 전민일보
  • 승인 2014.11.11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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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수필가, 전 전북학생교육원장

 
가을비가 내리고 소슬한 바람이 지나간다. 가로수 은행나무 밑에 누런 은행 알이 즐비하게 쌓여있다. 한 그루에 오십여 개는 되는 성싶다. 할머니가 검정 비닐봉지에 은행 알을 주워 담지만, 지나는 행인들의 발길에 채여 반 너머가 으깨져 있다. 차도에 떨어진 은행 알은 자동차 바퀴에 뭉개졌다. 바람결에 시큼한 냄새가 퍼지고 사람들은 코를 찡그리며 고개를 돌린다.

곰팡이와 벌레에 강하여 관상수로 쓰인다. 불에도 잘 타지 않고 오래 사는 나무이며, 싹이 튼 지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 씨를 심고 손자를 본 나이에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른다.

나의 아내는 은행을 좋아한다. 기관지 천식이 있어 모악산 노점상에서 은행효소를 사오곤 하는데 효험이 있는 듯 싶다.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새벽에 가로 변이나 J대학 구내에 나가 은행을 주워오곤 하였다.

베란다 구석에 모아두었다가 과육을 제거하고 건조시켜 사용했다. 이제는 값도 싸고 흔해져 가게에서 은행을 사다 쓴다. 더구나 길가에서 주은 은행알은 매연에 오염되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져 줍는 사람이 적어졌다. 실제로 2012년 안양시가 도로변 은행나무 열매를 조사한 결과, 납과 카드뮴 함유량이 먹는 물 수질기준을 초과하거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도로가 상점에서는 은행 냄새 때문에 장사를 못하겠다고 민원을 내어 지자체에서는 은행 냄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가로수 은행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반가운 소식이다. 과수로는 열매를 맺는 암나무여야 하는데, 가로수 은행나무는 수나무가 대접을 받는다. 길가에 흩어져 으깨진 은행을 치우는 미화원들의 수고도 만만치 않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법을 개발하여 민간 기업에 기술이전을 할 방침이라 한다. 기술이전이 완료되면 단시간에 은행나무의 암수에 대한 대량분석이 가능하고 비용도 크게 줄어, 머지않아 가로수 은행나무 악취로 고통 받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지자체에서는 ‘은행 암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진다.’는 속설을 따랐지만, 맞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 세종로 등에는 은행나무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했고, 대구시에서는 암나무 백여 그루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주시의 가로수는 은행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언제쯤 가로수 은행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할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다. 예산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주요 간선도로를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연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노랗게 단풍이 드는 은행잎은 도시민들에게 가을 정취를 한결 느끼게 한다. 은행잎이 구르는 포도(鋪道)를 걷는 것은 도시민의 낭만이다.

얼마 뒤 노란 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은행나무 나목(裸木)은 우리에게 새 희망을 준다. 엄동설한이 지나면 새 봄이 오듯 삶의 질곡을 견디고 나면 번영의 새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가을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코트 깃을 세우고 포도를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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