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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임이 그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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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임이 그리운 이유
  • 윤가빈
  • 승인 2006.05.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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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한 선조의 모임

유인실
/수필과비평 편집장 시인
  
 아름다운 세상이 그립다.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한가롭게 ‘아름다운 모임’타령이냐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라는 말도 있듯이 이럴 때일수록 ‘지금, 여기’를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사건(?)과 연계해서 한나라당을 겨냥하여 ‘경악할 만한 비리’라고 예고까지 하면서 동호인 모임을 표면으로 부각시킨 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런 예고성 발언이 나왔을 당시 적잖이 기대(?)되는 바 없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한 건 터질 때가 되었지.’ 그러나 그건 정말 유치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시장이 별장에서 몇몇 젊은 여성 성악가들과 여흥 어쩌고 하면서 여야간에 공방이 오고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우, 제발 그만!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아름다운 모임이라고 판단하는 데에는 규정된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본시 모임의 목적이라는 게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 집단의 희망을 잘 반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도마에 오른 이 시장을 비롯한 테니스 동호인 모임이 극히 사적인 모임인데도 불구하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던 것은 그 모임의 주축이 주로 사회지도층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지도층을 판단하는 데 윤리성, 도덕성이 절대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기왕이면 사적인 모임일망정 사회지도층이라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탈이 없는 모임이 낫다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이다.
 비록 김 원내대표의 유감표명으로 그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우리 선조들의 모임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살구꽃이 피면 새해 첫 모임을 갖는다. 복숭아꽃이 피면 다시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여름을 즐기기 위해 한번 만난다. 그러다 서늘한 초가을 서지(西池)에 핀 연꽃을 완상하기 위해 또 모이고, 가을이 깊어져 국화가 피면 모인다. 겨울에 들어 큰 눈이 내리면 다시 만나고, 세모에 분에 심어둔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면 모인다.”
 다산 정약용이 주도했던 열다섯 벗들이 만든 죽란시사의 모임규칙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니. 그들은 치자, 파초, 매화, 동백 등이 어우러진 운치 속에서 수레바퀴의 소음을 잊은 채 시상을 키웠다.
  다산이 윤지범, 이유수 등과 이 죽란을 만들 때는 유배 가기 전 정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시절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를 이끌어가는 잘나가는 ‘실세’에 해당될 것이다. 15명 회원 중 정조가 직접 뽑은 초계문신(抄啓文臣)이 3분의 1에 해당했으니 그 모임이 얼마나 귀족적이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다산을 비롯한 죽란 동인들이 그러한 ‘일진’의식으로 안하무인하고 황제연하며 설쳤다는 말은 없다. 다산이 귀양 가기 전 정권의 실세로 군림하였던 시절이었지만 워낙 근검을 평소 생활신조로 삼고 있었기에 죽란시사의 만남 자체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만남으로만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위상과 모임 성격으로 얼핏 미루어보기엔 시와 술과 낭만이 어우러진 팔자 좋은 사대부들의 모임 같지만 죽란의 모임이 계절에 따라 이루어진 것은 단순하게 꽃을 보고 햇과일을 맛보자고 만난 건 아닐 게다. 추운 겨울 이기고 꽃으로 피어난 이치에서 우주의 신비를 느끼고, 잎과 꽃을 피운 다음 열매를 맺는 자연 철리에서 생명의 영원성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의 대우주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철리를 통해 얻고자 한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연을 통해 살아가는 이치를 깨치며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모임’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모임 행태를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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