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통사고 환자다!
두 달여 전이다. 하루 두 번 이상 건너다니던 도로였다.
신호등은 없었다. 횡단보도에 들어서던 중이었고, 곧이어 나는 오른쪽 엉덩이로 바닥에 떨어졌다. 부서질 것 같은 통증. ‘아, 짜증나!’ 나의 모든 일상이 깨지는 것 같았다. 맞았다.
이후 나는 환자다. 부딪힌 기억은 없고 나가 떨어진 흔적만 남았으나, 궁금은 했으나, 절차를 감당할 만큼은 아니었는지 영상은 확인하지 않았다. 언젠가 ‘보리라’ 했지만 그 ‘언젠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생경하게도, 거리에 자동차가 너무 많다. 그 쇳덩이의 움직임이, 속도가 두렵다. 발걸음마다 멈칫하게 된다.
다행히 출혈이나 골절은 없어서 응급실을 돌아나와, 몸은 느리게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 ‘느린’ 시간 동안 ‘길게’ 쉬게 되니 치료 받지도, 일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반대쪽 몸이 상해 가는 것을 느낀다.
보험의 약관은 사고의 충격을 완치시키지 못한다. 의료진 또한 도침과 물리치료 등의 치료를 제공할 뿐. 제반 불편과 향후 재활 등은 내 주머니로, 내 몸과 혼자 싸워야 한다. 그러다가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가 정한 치료 방법과 스케쥴에 일방적으로 불려 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치료되고는 있는 것인지.
뜨거운 여름은 가고 있다. 이 지루한 치료를 종료하고 ‘합의’하여 ‘사건’을 마무리하고, 더 이상의 회복을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는지. 사회 보장 제도 안에 ‘나’는 없다. 주객전도다.
병원에는 보험이 산다. 자동차보험, 암보험, 실손보험이. 의료진도, 행정직도, 환자도 그 손발이다. 청소 아주머니는 새벽부터 맡은 일을 한다.
저녁 식사가 일찌감치 지하에서 올라오고 나면 퇴근 후, 병원은 잠에 들고 환자는 배가 고프다. 제도 안에서 밖이 되어버린, 수많은 ‘나’들을 떠올린다. 틀 밖의 돌봄 받지 못한 마음들을 생각한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국가 지원이 되는’ 어린이집으로 자녀를 픽업하러 왔던, 제도를 잘 활용하는, 잘 아는, 잘 사는 사람들. 그 사각지대에서 스스로 생을 놓는 사람들까지. 조금은 사소한 사고로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사회보장’의 본질을 돌아보고 가진 것이 없어서, 몰라서 아프고, 야위어가는 이웃을 돌아봐야 한다.
김수예 시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