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을 읽는 저녁
2025-08-29 기형서 기자
김 은 숙
초원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쓰고 온 후로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는
친구의 소식을 들은 후
나도 덩달아 눈물이 흔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소환 된 옛날은
풀이 바람에 나부끼던 먼 언덕이다
구름이 덧 씌워질 때마다
한 뼘씩 낮아지곤 하던
나무들의 중심
새 따라 온 숲은 초록의 이야기로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미루나무며 어린 소나무는
허공을 이고 가는 오솔길을
온종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지
눈꽃이 하얀 저녁
푸성귀로만 차린 식탁엔
새들의 시 낭송이 한 구절 얹힌다
/1990년 《현대문학》으로 수필등단, 《지구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길』, 『귀뜸』, 『초원을 읽는 저녁』과 수필집 『그 여자의 이미지』, 『길위의 편지』, 『그 사람 있었네』 등 출간, 새천년 한국 문인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하이쿠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대상 등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