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고향길
2025-08-19 전민일보
새해 고향길
서설이 군데군데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남았다.
한낮, 시리도록 적막한 고요.
잠들었을까.
낯선 듯 낯설지 않은 흑백사진 같은 수채화를 본다.
두려움과 평화로움 사이에서도 침묵은 더 짙어질 뿐
썰매 타던 마을 어귀의 미나리꽝은
잔설에 이파리 간간이 내밀며 여태껏 날들을
질긴 생명으로 반긴다.
그 아래 다 스러져간 열녀비 구부정히 마중한다.
숨탄것들 어느 흔적도 없는 고샅길은 여전히
지금도 밤하늘 별빛 쏟아지고 있을까.
멧갓 어디쯤일까?
하늘을 받치던 새때들 우르르 지상으로 나를 향하고
어디쯤인가 포연처럼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 때문일까.
새들은 하강을 멈추고 다시,
날아오른다.
눈 속에 감춰진 새싹처럼 마을의 모습도 그렇게
진한 내음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고향이 주는 선물이겠지.
베어진 벼 밑동이 거대한 바둑판처럼 펼쳐지고
공룡알처럼 늘어선 지푸라기 뭉치들
시위하듯 이방인을 응시한다.
어릴 때부터 찬찬했던 후배 영식이는 귀농 후 첫
수확한 것이라며 서리태콩 한 됫박을 손에 꼭 들려주고
멧갓 아래 송 씨네 큰아들과 사위네가 귀농했다고
어머니는 들뜬 목소리다.
다시, 아련하게 깊어가는 고향의 침묵
올려다본 하늘
아기 웃음을 닮은 뭉게구름 가득 피어나고 있다.
/기형서
전북 김제 출생
김제중 남성고 전북대 졸업
전라일보 농촌여성신문 전민일보 등
2023년부터 글쓰기 활동 시작
주요 대회 시 수필 등 6회 입상
박덕은미술관 전국디카시문학상
새만금전국디카문학작품 등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