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신성시(神聖視)해야

2022-08-31     전민일보

산, 산, 산은 신성하고 위엄하기도 하다.

여름산은 청정미가 넘치고 모든 동식물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솟은 산도 좋고 나지막한 산도 좋다. 봄의 산은 이제 막 새 생명이 잉태된 듯 신선해서 좋고, 여름산은 절정의 젊음을 자랑해서 좋다. 가을산은 형형색색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여 그 완숙함을 내비치어 좋고, 겨울산은 전나상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며, 그 고요함과 쓸쓸함으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서 좋다.

내 고향은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깊숙한 산골짜기 청림(靑林)마을이다. 산림이 울울창창했다. 그러나 그때는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으로 산에 오를 여념이 없었다. 퇴직 후에야 비로소 등산을 하므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현재는 전주시 학산(鶴山)아래에 살고 있다. 유년기나 노년기 모두 산속 또는 산 밑에 살고 있으니 청청한 공기, 청량한 숲의 향기로 내 건강을 지켜주니 정말 행복한 삶이요, 산의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내 한때 등산 단체의 일원이 되어 전국을 무대로 한 달에 한두 번씩 등산을 즐겼다. 높은 산으로는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의 정상에 올랐으며, 낮은 산으로는 모악산, 변산 칠갑산 등을 오르기도 했다.

등산의 의미는 세상 파도에 시달린 심신을 단련도 하고, 정상에 오르는 성취감과 산하를 관망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도 기르니, 생기가 솟아나는 듯 싶고 더없이 많은 기쁨이 넘친다.

한편 아내 또한 부부등산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므로 그 날만은 모든 시름 내려놓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산은 언제까지라도 몸과 마음을 편히 묻을 수 있으며, 어떠한 비관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따뜻하게 쓰다듬고 보듬어준다. 산은 다채로움과 그윽한 정적으로 찾는 이를 언제까지 다정하게 맞아준다.

수많은 산이 있지만, 거기에는 표준치라는 게 없다. 아름다운 산, 험악한 산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일 뿐이다. 산은 자기들끼리 키재기를 하지 않는다. 모두 평범한 산이요, 대자연의 보고다.

최근 기상청에서는 50년만의 가뭄이요, 지구를 달구는 혹독한 더위라고 보도했다.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들이 폐사하고 들에는 농작물들이 말라죽는 현상으로 이는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을 뒤 학산에 오르면 밀림으로 조성한 산이라 솔향기가 손님을 반기고 빽빽한 솔숲의 그늘을 선사하니 그 또한 인간은 산의 혜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세계적으로 지구 면적의 70%가 산지로 조성되어 있어 인간은 여러 가지 산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이라 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산이요, 강이다. 그 중 가장 경관이 수려한 산과 강, 78개소를 공원으로, 국립공원 22개소, 도립공원 29개소 군립공원 27개소를 지정 관리하며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 또한 산과 강의 자연자원의 혜택이다.

산은 말이 없고 덕성스럽다. 미남미녀, 인상이 험하게 생긴사람, 오물을 버리고 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평범히 대한다.

산은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의 관계없이 동식물들의 온상이다. 온갖 날짐승, 곤충, 짐승들의 생활공간이요 생태온상이다.

큰 산에는 맹수가 살고 있는가 하면 멧돼지를 비롯하여 각종 동물들이 제멋대로 번식하여 개체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만약 산이 없었다면 그 많은 동물들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생활할 수 있을까! 산은 만물의 생태공간이므로 그야말로 덕의 산이라 할 수 있다.

나는 20여 년 전 동남아시아 4개국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말레이시아 밀림지역을 탐방했다. 그 밀림의 나무들이 키가 크고 둘레가 크므로 그 나무들을 보려면 목을 빼고 하늘 방향으로 보아도 끝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 40여명은 한결같이 탄성을 자아냈다. 그 산은 평평한 낮은 산이며 목재는 세계적으로 수출을 한다 하니 그 소득이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 또한 산의 소산이다.

도심에서 멀리 가지 않아도 시민들은 물론 전 도민들의 쉼터요, 안식처의 산이 바로 도립공원 모악산이 있다. 모악산은 노령산맥의 줄기, 영산이다. 해발 1천 미터 미만의 산으로 전주 시내에서 30분 정도의 거리로 완만한 산이라 남녀노소 모두 등산을 즐기는 산이다. 주말이면 산이 몸살을 앓고 있어 오죽하면 산의 휴식기간을 주어 관리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산은 자연 그대로인 성한 곳은 별로 없다. 가는 곳마다 허물어지고 파헤쳐져 신음하면서 앓고 있다. 자연이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거나 바꾸어질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을 말하는데, 그대로 있어야 할 본질이 말 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무너져 가고 있다.

산은 인간의 영원한 벗이다. 우리는 일에 지쳤을 때, 정신이 피곤할 때, 인생의 고독을 느낄 때 산을 찾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죽으면 산으로 돌아가 한줌 흙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신성한 산을 아끼고 가꾸어 후세에게 물려줘야 한다.

고재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