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여!

2020-11-13     전민일보

우리는 술 마시기 전에 다양한 용어의 ‘위하여’를 건배사로 사용하지만 서양인은 ‘Let's make a toast’라 한다. ‘toast’는 빵, 고기, 설탕 등과 같이 셀 수 없는 물질명사라서 관사 a, an을 붙이거나 복수형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장 속의 a는 toast가 물질명사의 빵이 아니라 일반명사임을 암시한다.

서양인은 포도주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하여 포도주를 잔에 따르기 전에 먼저 토우스트 조각을 잔 바닥에 넣었다. 토우스트가 앙금과 불순물을 빨아들여 포도주의 순수한 맛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건배는 서양에서 비롯된 문화다. 그들의 유목민과 같은 생활에서 비롯된 음주법은 술잔을 같이 들고 마주 보며 한 모금을 마시는 것이 건배의 예의였다. 당신과 내가 나누어 마시는 술에는 독약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일종의 예식이었는데 그것이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문화로 발전했다.

잔을 부딪칠 때 나는 명징(明澄)한 소리가 종소리와 같아 귀신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벽사의 의미를 담아냈다. 귀신은 종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것을 착안한 것이다.

우리는 술잔을 들 때마다 잔을 부딪치며 ‘위하여’를 외치며 요란한 건배사로 분위기를 띄운다.

기분 내키는 대로 건배사를 남발하다 보니 성적인 모욕감을 담은 말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오바마 건배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오래오래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라는 뜻의 이 건배사를 어느 고위 공직자가 ‘오바마’를 건배사로 선창한 후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여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일로 그는 성희롱과 여성 비하 발언을 이유로 고위직에서 물러났다.

한국인처럼 건배를 좋아하는 나라도 없다. 건배는 좌장이 먼저 제의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물컵이라도 들고 선창을 따라 외쳐야 한다. 그냥 무의미하게 마시는 것보다 한 박자 쉬며 재담을 듣기도 하여 좋은 의미도 있다.

그러나 옆 좌석은 아랑곳없이 술좌석이 떠나갈 듯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확인하는 집단무례 행위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잔을 주고받으며 마셨기 때문에 건배 대신 품격이 있는 시를 읊었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는 혼자 마시는 술자리도 혼자가 아니다.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라며 건배 없이 술과 함께 달빛을 즐기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했다. 친구와 마주하고 술을 마시는 ‘산중대작(山中對酌)’에도 건배가 없다. 오히려 거문고로 취흥을 돋운다. 그것이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술문화였다.

중국에서는 술을 홍우(紅友)라 하여 좋은 벗으로 여기지만 고양이 오줌[猫?尿]으로 폄하하여 혐오감을 지닌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술자리에 함께 한 모두가 홍우로서의 술을 대할 수 있는 건전한 문화 창달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의 건전한 사회, 건전한 술문화를 위하여.

강기옥 시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