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偶像)과 금기(禁忌)

2019-02-26     전민일보

이문열 소설 [사로잡힌 악령]이 세상에 나왔을때 그것을 묵과할 수 없던 세력이 있었다. 정의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그 작품은 도발이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겐 모르지만 작가와 지식인에겐 정치권력을 뛰어넘는 거대한 벽과 같은 존재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었을까.

글로 말하고 평가받아야 할 작가는 결국 타협의 길을 받아들인다. 이문열은 이렇게 이해(?)를 구했다.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 이 작품은 결국 세상으로부터 거둬들여진다. 이문열에게 항복을 받아냄과 동시에 이 작품을 그의 작품 목록에서 아예 제외하게 만든 거대한 힘의 주체는 ‘민족문학작가회의’였다.

의문이 든다. 만일 [사로잡힌 악령]에서 어떤 시인의 행보를 연상했다면 그들은 왜 분노한 것인가.

그 시인의 행보에 나타난 위선과 부도덕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면 답은 그것이 거짓과 모략에 근거한 불순한 것이어야 한다. 앞선 이유라면 입증 책임은 어떤 시인에게 있다. 그리고 후자라면 그것은 다른 형태로 이뤄졌어야 한다.

만일 그 모두가 아니라면 답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그 분노가 20세기 판 분서갱유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그 어떤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정말 중요한, 그 시인의 행보에 대한 검증은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고백이 나왔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던 한국의 대표 시인은 이제 추악한 성 추문의 당사자가 되었다. 놀랍게도 고백 속 그의 행태는 [사로잡힌 악령]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누가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인가.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모든 사안은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어릴 적귀엽다는 말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내 성기를 만지던 할아버지들을 성추행범이라며 고소할 수는 없다.

그 시인이 살았던 당대의 정서와 도덕적 기준은 오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 대한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그가 살던 그 시대의 기준에서 봐도 분명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다.

공인의 권위 상실은 개인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회적 자산의 감소와 신뢰의 상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던 그의 시를 곤혹감과 의구심을 가지고 봐야한다는 것을 과연 무슨 말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신뢰를 상징하는 한국의 대표 언론인이 받고 있는 일련의 의혹도 그 핵심은 사생활에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신뢰를 의심받는 상황이 되었다는데 있다.

최근 국민배우라는 이름을 받고 있는 송강호의 폭행이 수면에 등장했다.

김용호 기자는 최근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송강호의 폭행을 폭로했다. 송강호가 자신을 존경한다며 인사하러 온 후배 배우를 술자리에서 아무 이유 없이 폭행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폭행을 목격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언론 반응이다. 그야말로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연예인 사생활 보도에 매달리는 그 수많은 매체 중 어느 곳에서도 기사화 하지 않았다.

난민에 대한 인류애를 호소한 유명배우가 정작 자신과 자신의 영화를 위해 헌신하는 스탭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해대는 것은 그저 이미지와 현실의 불일치 정도로 치부하면 될 것이다.

고은, 손석희, 송강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영역을 넘어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상식을 말하고자 한다. 권위와 신뢰는 그것을 얻고 지켜가야 할 당사자의 몫이다.

진영논리나 권위를 빙자한 권위주의로 우상이 된 특정인과 대상을 불의와 거짓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세력은 그 자체로 열린사회의 적이다. 송강호에겐 보호가 아닌 반론의 기회를 줘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괴물은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우상과 금기는 열린사회의 적이다.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우상과 금기가 존재하고 있는가.

장상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