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상조

2018-06-11     전민일보

중국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때로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의 일이다.

유종원이 유주를 관할하는 자사(장관급)로 좌천되었다가 내직으로 복직되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을 때이다. 그와 절친한 친구인 유우석이 파주자사로 좌천되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파주 땅은 매우 궁벽한 두메산골이라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유우석은 80이 넘은 늙은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다. 늙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모시고 갈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이다. 내 차마 친구인 유우석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 유주자사와 파주자사를 서로 바꾸자고 간청해야겠다. 이일로 내가 다시 죄를 입어 죽는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며, 유종원이 황제에게 청원한 결과 유우석이 형편이 좀 나은 연주자사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당나라를 대표했던 문장, 정치, 사상가였던 한유는 유종원의 진실한 우정에 깊이 감동했다. 그래서 유주자사 유종원과 그의 친구 연주자사 유우석과의 우정을 찬양하는 글을 유종원의 묘비명에 한유는 이렇게 썼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간담상조),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여기에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이 나온다. ‘간과 쓸개를 보여주면서 서로 간에 가슴속에 숨김이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마음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귀는 절친한 사이를 말한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유종원과 유우석의 간담상조 우정이나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管鮑之交)처럼 진정한 우정은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희생하고 도움을 주어야 빛을 발한다.

21세기 들어 이런 ‘간담상조’할 수 있는 친구가 과연 우리에게는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관중과 포숙아, 유종원과 유우석은 이미 간담상조 하면서 이를 몸소 실천한 친구들이다.

반면에 을사오적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완용은 어땠는가! 문장은 물론 서예, 정치 등에서 당대 최고인물이었다.

세태에 따라 약삭빠르게 변신하는 재주 또한 으뜸이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었고, 육영공원이 세워지자 제일 먼저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다.

그도 처음에는 고종과 민비의 측근으로 수구파였었다. 그 뒤 미국 외교관으로 가서는 친미파가 되었다. 다시 친러파로, 친일파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마침내 매국노로 변신한 것이다.

곧잘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나 때로는 시대가 한 인물을 삼키기도 한다.

그는 분명히 글을 잘 쓰며 예술도 잘 이해하고 머리도 좋아서 훌륭한 교양인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번 잘못 먹은 탓으로 영원한 매국노가 된 것이다.

한유가 증오하였듯이 사람들은 평소에 술잔을 나누고, 호형호제하며 간과 쓸개를 다 꺼내줄듯이 사귄다. 그러다 막상 어떤 이익이 앞에 있거나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칼날처럼 돌아서는 세태가 어찌 지금이라고 없을 수 있을까. 친구를 위해 몸을 던지고 멀리 오지로 대신 가서 근무해줄 친구를 찾는다는 생각부터가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담상조’는 이처럼 우정과 의리를 표현하는 고사이다.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에 “우린 간담상조 같은 사이다.” 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당나라 때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간담상조가 필요하다.

이태현 전북도 안전정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