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편지

2017-07-19     전민일보

‘글쓰기의 전략’ 수업을 종강하는 날,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것을 발표하게 하였다.

작년에 ‘인문고전 읽기’수업을 수강했던 사라가 발표를 마치고 들어가면서 손편지를 부끄럽게 건넸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얼마 전 기말고사시험을 채점하면서 사라가 준 편지를 뒤늦게 읽었다.


선생님!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교수님’이라 부르지 않고 유일하게 마음 편히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한일장신대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1학년 때 선생님과 강의실에서 만난 첫 만남은 저에게 충격이자 감동이었습니다. ‘인문고전 읽기’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주시고 학생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교에 입학했는지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냈을 때, 선생님 수업은 저에게 소망의 마중물이 되어 저를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이번 학기에 선생님 강의를 신청한 것이 저에게는 마치 신의 한 수였습니다.

매시간 선생님께서 쓴 시나 수필을 낭송해주실 때마다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무디고 황량한 제 마음의 밭을 축축하게 적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의가 목요일 이른 시간에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목요일은 소풍 가는 날처럼 설레었습니다.

글쓰기를 열심히 배워 선생님께 멋지게 편지를 꼭 쓰고 싶었습니다. 글솜씨가 많이 부족하지만 몇 자 적었습니다.

부디 제 마음이 교수님께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선생님을 만난 학생들은 저와 같은 마음을 한 번쯤 가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학생들을 사랑하시는 그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학기 동안 선생님으로 인해 배고프지 않은 수업이었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17년 6월 15일

선생님을 사모하는 사라 드림.


장미가 다소곳하게 피어있고 하트무늬가 수줍게 모여 있는 편지지에, 들여쓰기와 단락 나누기를 담백하게 하여 쓴 편지였다.

사라는 강의시간에 맨 앞에 앉아 늘 수업에 젖어 들었다. 시험 점수도 만점에 가까웠다.

채점하기 전에 사라 편지를 읽었으면 만점을 주는 실수를 범했을지 모른다.

매 학기가 꽃처럼 피어 개강했다 꽃처럼 지며 종강을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이라는 말 대신 만남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강의시간을 통해 많은 학생과 만나고 헤어진다.

어느 시인은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이라고 노래하였다. 비록 종강하였지만, 한 학기 동안 만났던 학생들과 재회하려고 방학 집중 글쓰기 교육을 준비하였다.

7월 첫 주부터 개강이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물고기가 날 수 있는 허공이 넓어진다. 오랜 가뭄으로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저수지가 어제 내린 비로 가볍게 차올랐다.

많은 학생이 강의실을 물처럼 채워 우리 만남이 물기가 있으면 좋으련만. 잘 쓰든 못 쓰든 글 쓰는 데 바지런을 떨며 흐르는 물결이 되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갈하게 손편지를 써서 지상에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침으로 우표를 붙여 보내면 좋으련만.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