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최현숙 사회복지사

2015-08-28     전민일보

及其老也血氣旣衰戒之在得

“사람이 늙음에 이르면

혈기가 쇠약해지니 경계할 것이 얻음에 있다”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양(陰陽)의 변화로 설명하려는 음양론(陰陽論)에 따르면, 우리 몸의 작용은 혈기(血氣)에 따라 달라집니다. 혈기(血氣)는 우리 몸이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에너지로, 형태가 있는 피(血)와 형태가 없는 기(氣)로 이루어집니다.

형태가 있는 피(血)는 음(陰)이고, 형태가 없는 기(氣)는 양(陽)인데, 소년일 때는 혈기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다가, 장년이 되면 왕성해지며 노인일 때는 쇠약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소년일 때 성생활로 정기(精氣)를 빼 버리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가 없게 되니 여색(色)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혈기가 아주 왕성해집니다. 기운이 뻗쳐 다투고 경쟁하기를 좋아하니 싸움(鬪)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늙어서는?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늙음에 이르면 혈기가 쇠약해지니 경계할 것이 얻음에 있다.(及其老也血氣旣衰戒之在得)

사람이 늙어지면 혈기가 쇠약해지고, 혈기가 쇠약해지면 그것을 보충해서 채우려다 보니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에 따르면, 천지 만물은 무엇이든 꽉 차면 배설을 생각해 뿜어 내보내고, 텅 비면 채워서 보태려하므로 빨아들이게 합니다. 이것은 만물의 자연스러운 일로, 만물도 왜 그런지를 알지 못합니다. 소년일 때 여색을 좋아하고 장년일 때 싸움을 잘하는 것은 혈기가 차서 내보낼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늙은이는 혈기가 모자라서 늘 보충할 것을 생각하므로 그 마음이 음식을 사랑하고 재물에 연연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소년일 때는 여색을 경계하고, 정연일 때는 싸움을 경계하며, 노년일 때는 얻음(득)을 경계하라고 한 것입니다.

성인(聖人)도 혈기(血氣)라는 점에서는 남들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남들과 다른 지기(志氣)를 갖습니다. 혈기(血氣)는 때에 따라 약해지지만, 의지(意志)와 기개(氣槪)로 이루어진 지기(志氣)는 때에 따라 약해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정해지지 않았다가 장성해서는 왕성해지고 늙어지면 쇠약해지는 것은 혈기(血氣)이고, 여색(色)을 경계하고 싸움(鬪)을 경계하며 얻음(得)을 경계하는 것은 지기(志氣)입니다.

군자(君子)는 자신의 지기(志氣)를 굳세게 기르므로 혈기(血氣)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덕(德)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요즘 가족주의(familism)가 무너지고, 그것을 대체하는 복지제도조차 부실해지다 보니, 노인들이 점점 ‘얻음(得)’에 집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을 보이는 ‘어른’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한탄을 들을 정도로 말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