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덕(德)이란 외롭지 않는 것이니

이세준 전주 동산파출소장

2015-08-19     전민일보

德不孤 必有鄰

“덕이란 외롭지 않은 것이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북쪽 먼 지방에 이름이 궐이라는 짐승이 있습니다. 앞발은 쥐와 같고 뒷발은 토끼 같아서 잘 달아나지 못하는 짐승입니다. 궐은 공공거허라는 짐승을 아주 좋아해서 맛있는 풀(甘草)을 보면 반드시 그것을 씹어 공공거허에게 먹여줍니다.

한편 공공거허는 사람이 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궐을 업고 달아납니다. 궐이 잘 달아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궐과 공공허기는 서로 사랑하는 걸까요? 서로 사랑해서 서로 도와주는 걸까요? 아닙니다.

궐이 공공거허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공공거허의 잘뛰는 다리를 빌리기 위함일 뿐입니다. 공공거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본성이 궐을 사랑할 이유가 없지만, 궐이 맛있는 풀을 얻어 자기에게 먹여주기 때문에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금수나 곤충도 서로 자신의 것을 빌려주면서 그에 따른 보답을 할 줄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천하에 명리(名利)를 얻고자 하는 선비나 군자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공자는 말했습니다.

덕이란 외롭지 않은 것이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德不孤 必有鄰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나는 법입니다. 되로 주면 말로 갚는 게 세상인심입니다. 그러니 무릇 덕을 베푼 사람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은혜를 입은 자는 오히려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공자는 궐과 공공거허(??巨虛)라는 짐승을 들어 말합니다.

신하된 사람은 힘쓰고 부지런히 하여 임금을 위하되 그 상(賞)을 요구하지 않고, 임금 된 사람은 은혜를 베풀어 아랫사람을 먹이고 길러 주되 덕(德)을 베풀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역(易)」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노고를 베풀되 원망하지 않고, 공을 이루었지만 덕이라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후덕의 지극함이다.”

사람은 서로 그 값에 따라 주고받는 시장 이치처럼 맺어져 있습니다. 임금은 노복을 높이 달아 신하를 대해주고, 신하는 힘을 다해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신하가 생각하지 않았던 공을 세웠을 때 임금은 그에게 커다란 상을 내려주어야 하고, 또 임금이 신하에게 특별히 다른 은혜를 베풀었을때 신하는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릇 신하로서 임금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애쓴다면 화(禍)의 근원이 되고, 임금으로서 신하의 공에 보답해주지 않고 형벌과 상을 꺼린다면 난(亂)의 기틀이 되고 맙니다. 화란(禍亂)의 근원은 바로 은혜를 갚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이게 공자 시대에만 통하는 이야기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들어맞는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