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털어내기

이분남 수필가

2015-04-17     전민일보

연일 고온 다습하다. 집안 곳곳을 치우고 손질해도 꿉꿉하기 이를 데 없다. 햇빛을 꾸어다 비칠 수도 없고 바람을 몰아다 통풍을 시킬 수도 없으니 여기저기 곰팡내가 고약하다.

세간 사이를 좀 멀리 두어 간간이 습기를 한 볼때기 머금은 바람이나마 들어와 거풍되기를 바랄 뿐, 마른걸레를 들고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곰팡이를 닦아내는 일이 고작이다. 할 수 없이 한여름 더위에 보일러를 가동하고는 문이란 문은 죄다 열었다.

유리창과 창고 문, 그릇장과 싱크대, 서랍장과 이불장, 그리고 옷장 문을 열었다. 장난이 아니다.

묵은 옷들이 얼룩덜룩 버짐이 피어 퀴퀴하다. 사계절 옷이 빽빽이 들이차 숨통이 막혔던 게다. 지레 거풍을 시켜 두었던 옷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이동식 간이 건조대와 옷걸이를 거실에 들여놓고 옷을 모두 꺼내어 손질했다.

전문세탁을 해 둔다면 좀 낫겠지만 옷솔에 물을 묻혀 곰팡이를 털어내고 걸어두었다. 처서도 지났으니 한 며칠 지나면 낫지 싶어서다. 초벌 일을 끝내고 시원한 냉차를 타들고 식탁에 앉았다.

거실 한가득 걸려 있는 옷들을 바라보다 문득 몸을 털었다. 어디 곰팡이가 물건이나 옷가지에만 피어오르겠는가. 음습하고 우울한 나날, 인간의 몸과 마음은 성했으려고. 몸은 매일 닦아냈다 해도, 습기먹은 마음에 덕지덕지 붙은 곰팡이는 또 어떻고. 쪄든 곰팡이는 너그럽지 못해 통풍 안 된 것들의 소산이 아니던가.

하절이 다가도록 불쾌지수가 높다고 얼마나 남 탓만 했던가. 짜증을 내고 미워하고 신경질내며 툴툴대질 않았던가. 습습한 여러 날 동안 그리했으니 마음에 낀 곰팡이는 옷에 피어오른 곰팡이보다 못하진 않을 거다. 그러고도 말끔한 척을 해댔으니 부끄럽다.

마음에 핀 곰팡이는 무엇으로 털어낼 수 있을까. 그래그래, 좋은 생각과 환한 웃음으로 마음에 밝은 빛을 밝히고는 이해와 배려, 사랑의 솔로 털어내면 되지 않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에 피어난 못된 곰팡이를 향해 열심히 솔질해 본다.

그럼 그렇지, 풀풀 날리는 곰팡이 먼지에 얼굴이 찌그러든다. 재채기가 날 정도다. 쪄든 것도 있다. 한 며칠 묵상하며 마음을 털어낸다면 여름의 상처도 아물듯 싶다.

먹던 냉차를 내려두고 물을 끓였다. 물주전자의 물이 바글바글 끓도록 두었다. 고온에 정제된 더운물은 마음속에 피어오른 아주 작은 곰팡이까지 세차게 털어낼 것만 같아서다.

홀홀 불며 뜨거운 차를 마시니 한여름 습한 열기와는 다른 열기가 온 몸에 퍼진다. 볕에 말린 듯 마음이 정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