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면

홍종원 사업가

2015-03-27     전민일보

己之但能口復之養而失於色養也

“저는 오로지 구복을 봉양할 줄만 알고 색양을 잃어버렸습니다”

신라 진성여왕 때 이야기입니다. 경주 분황사 동쪽 마을에 나이 스물 안팎쯤 된 여인이 눈먼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습니다. 그 여인의 집은 몹시 가난해서 먹을 것을 얻어다 먹은 지가 몇 년 되었는데, 마침 흉년이 들었습니다. 문전걸식조차 어렵게 된 것입니다. 여인은 하는 수없이 대갓집에 곡식 30섬을 받고 몸을 팔았습니다.

다음날부터 여인은 새벽같이 나가 대갓집에서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쌀을 전대에 싸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마을 인심이 좋아져서 쌀을 얻어온 것처럼 말하면서 어머니에게 쌀밥을 지어드렸습니다. 그렇게 새벽같이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일을 며칠 동안 했는데, 눈먼 어머니가 문득 묻는 겁니다.

“이전에는 거친 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편했는데, 요즘엔 향기로운 쌀밥을 먹는데도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냐?” 맛있는 쌀밥을 배불리 먹는게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무리 눈먼 늙은이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안다는 말입니다.

딸은 그런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눈먼 어머니는 딸을 껴안으며 모든 게 다 자기 때문이라고 통곡했고, 딸은 딸대로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울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구복을 봉양할 줄만 알고 색양을 잃어버렸습니다.(己之但能口復之養而失於色養也)

고려 말에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빈녀양모(貧女養母)’라는 이야기입니다. ‘빈녀양모(貧女養母)’는 가난한 여인이 어머니를 모셨다는 뜻입니다. 너무 가난해 자신의 몸을 팔아 효도했던 여인이 마침내 곡식 500석과 집 한 채를 상으로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주인공인 여인이 엄청난 상을 받았다는 해피엔딩보다는 “구복(口腹)을 봉양할 줄만 알았지 색양(色養)을 잃었다.”고 한탄하는 말이 눈길을 끕니다. 이게 무슨말인가?

구복(口腹)은 글자 그대로 입(口)과 배(腹)이니, 구복(口腹)을 봉양한다는 말은 부모 입맛에 맞는 음식을 배불리 드시게 하는 겁니다. 색양(色養)은 얼굴(色)을 즐겁게 하다(養)는 뜻이니, 색양(色養)을 잃었다는 말은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보니 얼굴이 환하게 펴질 날이 없다는 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대접하는 것도 좋지만, 맘 편하게 해주는 게 더 좋습니다. 물질로만 풍요롭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라는 말입니다. 비록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도 마음 편한 게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