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어제무예도보통지서(御製武藝圖譜通志序)

2013-11-01     전민일보

지난주에 글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대한 의의와 역사적 배경을 서술하였다. 이번 주의 글은 무예도보통지에서 정조(正祖,1752~1800)가 직접 쓴 원문을 번역해 가면서 이야기한다. 한문과 번역문의 어법이 난해함이 있는 것에 대하여 먼저 독자에게 양해를 구한다.
어제무예도보통지서(御製武藝圖譜通志序) - 어제(御製) 무예도보통지 서문이다.
아국연병지제(我國練兵之制) - 우리나라 병사들이 훈련하는 제도는 삼군연우교(三軍練于郊) - 삼군은 근교(郊)에서 위사연우금원(衛士練于禁苑) - 위사(衛士)는 금원(禁苑)에서 훈련하고 기금원연병성자광묘조(其禁苑練兵盛自光廟朝) - 그 금원에서 병사들의 훈련이 가장 번성한 때는 광해군(光海君,1575~1641)으로 부터이다.
연지궁시일기(然止弓矢一技) - 그러나 궁시(弓矢) 한가지에만 재주에만 그치고 이이여창검제기개미지문언(而已如槍劍諸技未之聞焉) - 창과 검과 같은 모든 기예는 대체적으로 들어보지 못했다.
선묘기평왜구(宣廟旣平倭寇) - 선조(宣祖,1552~1608)가 이미 왜구(倭寇)을 평정하고 구득척계광기효신서(購得戚繼光紀新書) -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新書)의 책을 구하여 보았다.
견훈국랑한교편질동래장사구해기곤봉등(遣訓局郞韓嶠遍質東來將士究解其棍棒等) - 훈국랑(訓局郞) 한교(韓嶠)를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 그 곤봉(棍棒) 곤봉(棍棒)등을 두루 물어서 연구하여 알게 하였다.
역기작위도보(亦技作爲圖譜) - 또한 그 무예를 도보로 만들었다.

이효묘광승전열빈행내열(而孝廟光承前烈頻行內閱) - 효종(孝宗,1619~1659)때에는 전열(前烈)를 이어서 내열(內閱)을 자주 행하였다.
모수모기익대이천칙격자지법어시호삭광단련의(某手某技益大以闡則擊刺之法於是乎稍廣團練矣) - 어떤 손과 어떤 기예가 더욱 커져서 열리고 격자지법(擊刺之法)은 이에 적고 넓은 것을 단련 하였다.
연역기이이기목미지가언(然亦技而已其目未之加焉) - 그러나 또 기예일 따름이니 그 조목이 더해진 것은 아니다.
내지선조기사(乃至先朝己巳) - 이에 선조(先朝) 기사년(1749년)에 이르러 소조섭리서무이죽장창등십이기증위도보비여역기통관강습사재(小朝攝理庶務以竹長槍等十二技增爲圖譜與亦技通貫講習事) - 소조(小朝)가 서무(庶務)를 섭정(攝政)할때에 죽장창(竹長槍)등으로써 12기(十二技)를 더하여 도보를 만들고 또한 기예를 관통하고 꿰뚫어 강습하도록 하였다.

철학박사·(사)조선어정무예협회 이사장 김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