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일부 고교가 수학여행을 해외와 국내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경우 국내 수학여행과 해외 수학여행에 드는 비용이 많게는 40여만 원의 차이가 난다는데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사회 양극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때인지라 더욱 의아스럽다. 당당하게 돈을 내고 해외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야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제 사정을 가진 학생들은 출발과 진행, 그리고 여행 후에도 깊은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학여행은 계획과 출발부터 신선하고 즐거워야 한다. 실제로 수학여행을 앞둔 날 밤에는 설렘과 즐거움으로 잠을 들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낯선 곳에의 기대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말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비용 때문에 울고 급우와 나뉘어 출발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피차 여행이 즐거울 수 없을 것이 명백하다. 단적으로 말해 친한 두 급우가 비용 때문에 각각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여행이 즐거울 것인가. 서로 어색한 감정 없이 유유하게 여행을 떠났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거나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곳만을 다녀온 학생들은 많은 돈을 내고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간 친구를 얼마나 부러워하겠는가. 갔다 온 후에도 친구를 통해 일본의 여행 얘기를 자연히 듣게 될 것인데, 그때 그 후일담을 듣는 것이 과연 즐겁기만 하겠는가. 또 친구 간에 서로 다른 수학여행의 추억을 가지게 될 것이다. 평생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이만큼만 생각해 보아도 차별적으로 이원화된 수학여행은 시정돼야 한다. 이 결정은 학생들 자신의 결정이 아닌 어른들의 결정으로 보인다. 어른들이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인 것이다. 여러 가지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웠을 게 뻔하다. 해외거나 국내거나 상관 없이 어디서든 배울 수 있고 어디서든 즐거울 수 있다고 합리화시켰을 것이다.
수학여행은 현장체험교육과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것이다. 굳이 해외여행이 아니라도 갈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국내와 해외로 나누는 것보다 함께 설악산이나 제주도를 가는 것이 진정 수학여행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