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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의식과 퐁네프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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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의식과 퐁네프의 연인들
  • 전민일보
  • 승인 2009.12.08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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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파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맥도날드를 찾는 내게, ‘햄버거 먹으러 프랑스에 왔냐?’고 비아냥대던 중년여인을 보며 콧대 높은 프랑스인을 실감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를 조롱하는 프랑스 외교관에게, ‘프랑스인은 정치를 모른다.’고 일갈했던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느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프랑스인의 과도한 자부심은 신들의 무덤이라는 판테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는 프랑스의 양심 에밀 졸라를 비롯해, 볼테르, 퀴리부인, 그리고, 장 물렝 같은 인물이 잠들어있다.
 하지만 그 콧대는, 같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두 사람, 페텡과 장 물렝에게서 도전을 받게 된다. 페텡은 드골의 스승이자 1차대전 당시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지만 비시정부의 수괴로 전락했고, 장 물렝은 레지스텅스 동지의 밀고로 붙잡혀 고문 끝에 자살하는 비극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페텡의 변절과 함께, 장 물렝을 밀고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클 것이다.
 과거청산과 관련 우리와 비교되는 프랑스지만, 많은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먼저, 우리가 겪은 36년(을사조약부터 하면 41년)이라는 세월은 나치점령기의 프랑스와 비교해서 너무도 긴 세월이다. 실제, 친일파로 알려진 사람 중에는 초창기에는 민족지도자의 풍모를 간직한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한, 세대가 넘어가는 식민통치는 교활함과 혹독함이 민족의식을 서서히 질식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금도 친일관련해서 얘기하는 것이 90%이상이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반민특위에 끌려나온 사람 중에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할 부분이 생긴다.
 같은 시대를 한 명은 광복군으로, 한 명은 20대 청년군수로 삶을 설계했다.
 그들이 같은 취지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오늘의 기준으로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독립투사나 혁명가가 되길 바라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정말 옳은 얘기다. 하지만, 일제치하 청년 군수를 지낸 분이 할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비판하는 것은, 그 속에 거짓이 있거나 내용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이광수에겐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에서 보여준 민족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 대신 일제에 대한 불순한 동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이광수 개인적으로는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민족구성원의 기대치가 너무 큰 사람이었다.
 장 물렝을 고발한 사람이 동지가 아니었으면 하는 프랑스인의 바램이 진실을 덮을 수는 없듯이, 독립문 현판을 쓴 사람이 이완용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친일청산이 어려운 것은 제2의 이완용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한 세대가 넘는 식민통치 속에 무디어진 죄책감과 우리에게 드리워진 공범의식일지 모른다.
 무디어진 죄책감과 친일민족반역자들이 교묘히 덧씌워놓은 공범의식을 깨트릴 수 있는 혁명적 기준과 실행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위안할 점은 역사가 비록 곡선으로 흐를지라도 결국 바다로 흐른다는 것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이 공유하는 사랑이 공범의식을 정당화시키는 것인지, 해체시키는 것인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리라. 퐁네프 아래로 세느강은 흐른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생각도.. 

장상록 / 완주군농기센타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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