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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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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 전민일보
  • 승인 2009.12.04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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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20일 대학 7회 동문회를 한다고 하여 서삼릉 옆에 있는 농협대학을 방문하였다.
학교 재학 시절에 어린 나무들이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였다.
오후 6시 반 학교 구내식당에 도착하였는데 먼저 온 친구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잡곡밥과 콩나물국 김치 명태 조림등 식단내용은 40 여 년 전 먹던 것과 비슷하였다.
학창시절은 혈기 왕성한 20대였고 먹을거리도 부족한 시절이라 아무 반찬이라도 꿀맛이었는데 지금은 그때처럼 꿀맛은 아니었으나, 추억 맛을 합하니 꿀맛이 되었다.
식사 후 회의실에서 정기총회를 하였는데 동문들의 발언하는 모습이 40 여 년 전 학창시절 성품 그대로였다.
회의가 끝나고 기숙사 방 배정을 받아 여행가방을 방에 놓고 기숙사 입구 넓은 장소에 모여 그간의 안부와 취미 생활 등에 대하여 술을 마셔가며 이야기하였다.
여흥시간이 끝나고 배정받은 호실에 들어가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였으나 학창시절 추억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회상되어 새벽 3시가 지나서 잠이 들었다.
학창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맨손 체조 후 삼송리 또는 한양 골프장 쪽으로 십리 정도 구보를 하였다.
아침 식사 후 재학시절 자주 갔던 서삼릉을 답사하려고 나무숲길을 따라 약 2km가서 서삼릉 입구에 도착 하였다
40 여 년 전 서삼릉의 부지는 대단히 넓었으나, 지금은 2차선 차도로 연결되어 목장 속 섬처럼 남아있고 대부분의 땅이 목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서삼릉에는 첫 눈이 살짝 내렸다.
서삼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산 38-4번지에 있는 희릉, 효릉, 예릉 3릉을 말한다.
희릉은 처음에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는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 안로가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고 주장하여 중종 32년(153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효릉은 조선 12대왕 인종과 인종의 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인종은 재위 8개월 만에 숨을 거두었다.
효성이 지긋했던 인종을 기려 능호를 효릉으로 하였다.
예릉은 조선 25대 왕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릉이다.
1844년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 하였고 1851년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 문근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문화재청의 ‘조선왕릉 훼손 현황’에 의하면 서삼릉은 가장 훼손이 심한 능으로 79만여 제곱미터가 한국 마사회의 종마장과 농협중앙회의 종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옛날 서삼릉은 130 여 만 평 넓은 부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종마장과 종우장에 포위되어 아주 비좁고 답답하게 보였다.
서삼릉 입구가 종마장과 종우장으로 인하여 주차공간도 협소하여 승용차나 관광버스가 주차하고 회전하기가 불편하게 되어 있다.
능 가까이에 종마장과 종우장을 만든 것 자체가 잘못되었지만, 드넓은 능의 부지를 대폭 줄여 변변한 주차장 하나도 만들지 않은 사실은 너무나 잘못된 행정처리라고 생각한다.
서삼릉은 2009년 6월 30일 ‘세계문화및 유산에 관한 협약’에 의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종마장과 종우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대폭 축소하여 서삼릉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빛나는 세계유산으로 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김백기 /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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