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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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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럴까.
  • 전민일보
  • 승인 2009.11.2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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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할머니 한 분이 장학금을 기탁했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은 분이셨다. 또한 1년 전에는 1억 원을 기탁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기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할머니보다 젊고 아직은 힘도 있는데 할머니만큼 기부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때문이었다.  
그러면 내가 가진 욕심은 어떤 욕심이고 그것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남보다 내세울 것도 없고, 남보다 자랑할 것도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러면서 그냥 가진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지나온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당장 내가 가진 것을 내놓고 남에게 베풀 용기도 없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자 더욱 더 위축되고 말았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남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거라는 위안을 해보았다.
몇 달 전부터 아내는 책을 정리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짜증나는 말이 더 늘어났다. 옷 좀 제자리에 걸어라, 책 좀 치우고 살자. 사실 좁은 방이 가구로 둘려있고, 그나마 틈새가 있는 곳은 책으로 쌓여있으니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책꽂이에 2중으로 놓여있는 책들은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방바닥에도 수북이 쌓인 책은 청소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짐이었다. 그러기에 누군가 책을 빌려 가면 가져오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마음먹고 정리를 하더라도 돌아서면 매양 그대로였다. 2중으로 놓인 책이나 방바닥의 책이 책꽂이에 올라갔을 뿐이니 달라질 것도 없었다. 

오늘은 집중 폭우가 내린다고 하더니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출근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락가락할 뿐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인다. 한 손에는 커다란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책을 안고 보니 무게가 제법이었다. 오늘따라 가까운 곳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주차를 시켜놓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접수대에 12권의 책을 내려놓으니 직원은 이상하다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반납이 아니라 기증인데요!’ 그제서야 장서용 바코드가 없는 이유를 알아채고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책을 놓고 돌아서는 내 팔의 무게가 가벼워지니 마음이 편해졌다. 올해 초,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자고 마음먹었었다. 처음에는 새 책을 기증하자고 하였었는데, 그것은 하나의 욕심이었고 기증을 더 이상 못하게 하는 단서가 되었음도 깨달았다. 기부는 양이 많든 적든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행하는 것이 정석임도 알게 되었다.
하늘은 아직도 비를 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맑게 개었다. 좁은 공간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책장이 고마워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일까 생각해보았다. 

한호철 / 한국문예연구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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