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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당신이 곧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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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당신이 곧 청년이다
  • 전민일보
  • 승인 2024.05.2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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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의 사업 중에는 그 규모가 다른 사업에 비해 크지 않음에도 필자가 유독 애정을 갖는 사업이 하나 있다. 바로 ‘청년문화예술프로젝트 예술있슈Issue(이하 예술있슈)’이다.

올해로 4년 차를 맞는 이 사업은 전북에서 활동하는 청년 소모임이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의 문제와 이슈를 문화예술의 관점과 방법으로 접근해 보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 과정을 통해 청년문화예술 커뮤니티의 구축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필자는 본 사업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중에 빠져야 했던 22년을 제외하고, 두 번의 과정을 멘토로서 함께 했다.

하지만 상기한 목적에 대해서 혹여 누군가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본 사업이 “청년 소모임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제와 이슈를 문화예술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는 프로젝트의 ‘수행 과정’을 통한 청년 커뮤니티의 ‘구축과 성장’에 주안점을 두느냐와 ‘수행 결과’를 통한 지역의 문제와 이슈의 ‘해결 효과’에 주안점을 두느냐가 아닐지 생각한다.

물론 공공의 예산이 투입되니 그에 따른 정량적 성과가 중요한 것 또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재단과 필자를 비롯한 멘토진은 긴밀하고도 끈끈한 논의를 통해 알맞은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를 힘 있게 뒷받침해 주는 것은 그동안 참여한 청년 소모임들이기도 하다. 매해 참여했던 청년소모임들은 그해의 수행 결과 또한 훌륭했지만, 이후에도 전북 지역사회 곳곳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소중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예술있슈를 통해 한 번 인연을 맺은 그들은 계속해서 필자와 소통을 이어가며 고민을 나누고, 때때로 기쁜 소식을 알려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감히 필자가 스승은 아니지만, 대견하거나 뿌듯한 마음이 든다. 예술있슈가 유독 애정이 가는 이유는 이런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 청년이 지역사회의 문제와 이슈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있슈의 필요성은 더더욱 분명하다. 필자가 가진 예술적 관점에 큰 영향을 끼친 글이 있다. 바로 김현의 ‘소설은 왜 읽는가’다. 김현은 그 글에서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밝혔다. 허구에 불과한 소설이 독자의 공감을 사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이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나는 어떠한가를 돌아보기 때문이며, 소설 속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같거나 다르지 않은가를 바라보게 하는 까닭이 아닐까.

물론 이 글에서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한정하고 있지만, 사실 예술이라는 범주로 확장해도 그 의미는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 또는 예술작품을 접하는 대다수의 첫인상은 “낯설다” 또는 “난해하다”가 아닐지 싶다. 당연하다. 예술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일상성에서 벗어난 것이 예술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엉뚱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니다. 그 낯섦이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평소에 당연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당연한가?”라고 말이다.

이른바 사회의 문제와 이슈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수한 변화의 요구가 일상성에 매몰되어 무시될 때, 행동하고자 하는 주체를 “가만히 있으라”하며 억압할 때, 우리는 문제와 직면하고 이슈에 사로잡힌다. 예술. 좀 더 넓혀서 예술적 시각과 사유는 그런 까닭에 역설적으로 적극적인 사회성을 지니게 된다. 예술있슈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리고 굳이 지역의 문제를 비즈니스의 방법을 활용하여 해결하고 그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의 개념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에서 비즈니스의 기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소하고자 하는 구매자의 욕구를 분석하고, 이를 충족하는 판매자의 전략을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즉, 예술가는 그 특성상 비즈니스에도 지극히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추진하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청년 소모임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예술있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에게 많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청년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책임을 강요하는 한편, 청년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혜택이 그들을 의존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바람직하게도 인간에게는 육체의 성장판 외에도 정신의 성장판이 존재한다. 성장할 수 있다면 우리 누구나 언제라도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청년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당신이 곧 청년이다.

전승훈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전략기획실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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