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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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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 전민일보
  • 승인 2023.05.16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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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던 8월의 어느 날, 필자는 어머니의 품을 힘겹게 벗어나 그렁그렁 울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우중 8월의 탄생 이야기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이유를 뚜렷이 알 수 없는 채로 몸이 아픈 영아기를 보냈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맥아리 없이 축축 처진 채로 우는 것 조차 지쳐하는 아기를 본 동네의 어른들은 ‘곧 죽게 생겼다’며 갓 아이를 낳은 산모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고비를 넘기고 몸은 성장했지만, 마음이 성장하지 못했던 나는 어린시절 내내 동네에서 알아주는 매우 사납고 까칠한 아이였다.

열 손가락은 늘 날카로운 손톱이 세워져 누구라도 할퀼 준비가 돼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것조차 콕콕 찌르듯 아프게 느껴져 친구들에게도 쉽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을 만큼 예민하고 사나웠던 어린날의 내 곁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도 없었다.

늘 날이 선 필자가 안타까웠는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께선 7살이 된 나를 남동생과 함께 집으로 초대하셨다.

유치원이 끝나고 남동생과 선생님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던 그날의 밤 풍경이 여전히 아른거린다. 다음 날 선생님은 어린 남매에게 무슨 반찬을 좋아하냐며 물어보시고는 좋아하던 소시지 반찬도 넉넉히 해주셨다. 맛있게 먹고 선생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유치원으로 등원했던 그날은 유달리 빨리 도착한 것만 같았다.

일년쯤 지난 어느 날, 다른 학교 유치원으로 전근 가신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선생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엉엉 울면서 아빠와 함께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유아기의 대부분의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지만, 아프고 까칠했던 내게 부드러움을 건네주셨던 선생님의 존함과 웃으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어 한번씩 그날의 풍경들을 떠올리곤 한다.

‘태양의 후예’ 드라마 속에 두 남녀 주인공이 전쟁 속에서 한 여자아이를 구했다. 전쟁 속에 세상을 살아가려는 방법을 어긋나게 선택하려는 아이에게 여자 주인공은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그런 여자주인공을 향해 남자 주인공이 말한다.

유시진 대위: 이렇게 만난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순 없어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강모연 의사: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파티마의 삶은 바뀌겠죠. 그리고 그건 파티마에게 세상이 바뀌는 일일 거에요. 그럼 됐죠 뭐.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젊었을 선생님은 하루 저녁을 어린 남매에게 내어주셨고,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처럼 외롭고 날카로웠던 나는 그날로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도 물음표의 모양으로 나와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인생의 전부를 마주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스쳐지나갔던 그 사람도 결국은 내게 온 커다란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내게 걸어오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오늘만큼은 이러한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송선미 문화통신사 팀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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