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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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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전민일보
  • 승인 2023.03.17 09: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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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별세한 것은 지난 3일인데 가족장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죽었을 때 프랑스인이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래서 오에 겐자부로는 더욱 특별하다.

그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단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가 아니다. 그가 문학으로 보여준 인간내면에 대한 통찰과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보여준 삶의 모습에 이미 그 위대함은 녹아있다. 인간은 분노하고 절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분노와 절규가 때로 또 다른 위선과 폭력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작 <인간 양>(人間の羊, 1958)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

“칼을 든 외국 군인이 버스 앞쪽으로 가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목덜미를 붙들려 버스 앞쪽으로 돌려 세워졌을 때 버스 중앙 통로에는 양쪽 무릎을 벌리고 엉덩이를 홀딱 깐 인간 양(羊)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줄지어 있었다. 나는 그 줄의 맨 끝 양(羊)이 되었다.

‘양치기, 양치기, 빵, 빵… 양치기, 양치기, 빵, 빵…’”

작가는 패전국 일본에 진주한 외국군인의 국적을 말하지 않고 있다. 버스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타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술에 취한 외국 군인들이 버스 안에서 일본인 작부를 껴안고 희롱한다. 돈을 주고 샀을 그 작부를 놓고 온갖 추행을 일삼지만 그 누구도 이에 항의하거나 제지하지 못한다. 집으로 가던 젊은 남학생 하나가 얽혀들어 성추행과 수모를 당한다. 신난 외국군인들은 버스에 탄 다른 남자들도 하의를 완전히 벗겨 성기를 드러내게 한 채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운 좋은 나머지 승객들은 자신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이 참담한 불상사를 외면한다. 더 큰 문제는 외국 군인들이 버스에서 내린 후에 일어난다.

늑대가 떠난 자리에 고고하고 정의로운 양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이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짓이 아닙니다. 사람을 짐승 취급하다니 미친놈들 아닙니까?”

“경찰에 신고를 해야 돼요. 피해자가 단결해서 여론을 움직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떠난 후 방관자인 양의 한 우두머리가 다른 방관자들을 선동해 목소리를 높인다. 위로를 빙자한 가해는 파출소에서 본격화한다.

“경찰에 가서 신고하자고. 빨리 할수록 좋아. 바로 저기 파출소가 있잖아.”

“버스 안에서 술 취한 외국 군인들이 이 학생과 다른 사람들의 바지를 벗겼다고요. 그리고 벌거벗은 엉덩이를…”

하지만 경찰들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방관자들과 더불어 웃을 뿐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의감에 충실한 우두머리 방관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왜 이름을 숨기는 거야? 나는 기어코 네 이름을 밝혀내고 말겠어. 군인들은 물론이고 너한테도 수치를 안겨주겠어. 네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절대 네 놈을 놓아주지 않을 거다.”

오에 겐자부로가 탁월한 것은 피해자의 분노와 절규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그것은 문학이 아닌 사회면 뉴스나 거룩한 훈시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한국 문학이 인류보편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한(恨)’이라는 말로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방관자들은 가해자와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이용해 자신의 헛된 정의감을 구현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트린다. 이런 행태는 생각보다 더 많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가까이 존재한다.

인촌 김성수가 죽던 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여준 슬픈 감정은 그가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오늘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당시 한국인들은 오늘 우리보다 애국심이 덜해서였을까?

우리는 대부분 버스에 탄 방관자의 입장에 서있다.

늑대가 사라진 곳에서 분노와 절규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이 정의로움이 될 순 없다.

위대한 문호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의 평안과 안식을 기원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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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기 2023-03-17 19:15:08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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