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01:40 (금)
장점(長點)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
상태바
장점(長點)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
  • 전민일보
  • 승인 2022.12.19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월 말, 시드니를 상징하는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수학여행을 온 일본 (여)학생들을 봤다.

그 또래 한국 학생들이 그렇듯 일본 학생들에게서도 청순하고 밝은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그곳에서 조금 특별하게 만든 것이 보였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어던진 호주인들과는 달리 일본 학생들은 실외에서도 전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질서 있고 타인을 배려하며 권위를 존중(?)하는 일본인은 그 외에도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을 얘기하던 시절 일본인의 그런 모습은 닮아야 할 지향(指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장인정신’이다. 도쿄대를 졸업한 수재가 가업을 잇기 위해 3백년 된 우동집 사장이 되는 것은 소소한 예일 뿐이다.

그런 일본 특유의 장점이 1980년대 일본을 미국의 아성을 위협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보다 더 신뢰받는 안전자산 엔화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일본이 어느 순간 잃어버린 10년에서 20년 30년 그리고 40년을 향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을 ‘플라자 합의’로만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삼성이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일본은 충분히 코웃음을 지을만했다.

그런 일본 반도체는 왜 몰락했을까? 아이러니하지만 그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장인정신’이다. 필요이상의 기술력을 고집하는 것은 삼성을 보면서 우월감을 가지게 할 수는 있었겠지만 가격을 비롯한 시장메커니즘에는 반하는 것이었다.

팩스를 버리지 못하는 일본인이나 전기차를 바라보는 도요타의 시선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도 박제화 된 일본의 장점이다.

누군가의 장점은 그를 특별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장점은 변화의 대상이 된다.

안정복(安鼎福)이 쓴 <동사강목 고려인종 7년 기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훌륭한 기병(騎兵)이 들판에서 어울려 칼과 화살로 서로 교전하여 당장에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오랑캐의 장점이고 중국(中國)의 단점인 것이며, 강한 쇠뇌[强弩]로 성을 오르고 견고한 진영을 굳게 지키면서 적병의 쇠진함을 기다리는 것은 중국의 장점이고 오랑캐의 단점인 것이니, 마땅히 그 장점을 먼저하고 그 변화를 관찰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점 그 자체가 아니라 장점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총과 대포를 마주한 기병은 더 이상 우위에 있을 수 없고 견고한 성은 순간의 방비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승리의 공식이 될 수는 없다.

오늘의 한국인은 일본인은 물론 서양인에게도 콤플렉스가 없다.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압도적 현실 앞에서 주눅이 들었고 서양인들을 보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그늘을 확인해야 했던 그 기억은 내 젊은 시절로 끝을 냈기 때문이다.

비틀즈를 듣고 <로마의 휴일>를 보면서 그 흔적을 찾아 성지순례(?)에 나서고 싶었던 욕망은 이제 BTS와 <기생충>으로 치환되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들이 모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고려 말의 수많은 모순을 해결하는 실천 학문으로 등장한 성리학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종(世宗)을 거쳐 성종(成宗)에 이르는 그 시기는 조선을 만들고 운영하는 성리학의 장점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주목할 것은 성리학이 이론적으로 최 정점에 이른 선조(宣祖)대를 기점으로 조선은 체제의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분단된 반쪽의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는 전 세계인을 상대로 충분히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그래서 의문이 든다. ‘단군 이래’라는 수식어를 ‘조자룡 헌칼’처럼 쓰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한국사의 프라임 타임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제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는 것만 남게 된다.

한국인은 감성이 풍부하다. 거기에서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이제 돌아볼 것은 그런 모든 것이 오늘과 내일의 우리에게도 온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장점(長點)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적용 대상과 환경이 변화하는 데 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는 별개의 영역으로 남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여유 슬림컷' 판매량 급증! 남성 건강 시장에서 돌풍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