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만큼 보답받았으면 좋겠어요"
딸을 대학수학능력시험장으로 보내고 난 뒤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 입을 뗀 채현주(54)씨의 말이다.
채 씨는 “딸 걱정은 수능 한달 전부터 해왔는데 오늘만큼은 많이 웃어주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라며 “딸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학교를 들어갔는데 저 또한 맘이 편하진 않네요”라고 말했다.
미래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7일 치러졌다.
이날 오전 6시 50분께 전주 사대부고 정문 앞. 수능 응원단도 없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하나둘씩 부모님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는 학생들은 부모님과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 비장한 모습으로 12년간의 노력의 끝으로 걸어갔다.
수험생들은 심리적으로도 긴장돼 보였지만 추운 날씨 속에서 어깨 등의 근육마저 긴장해버린 건지 정문 앞에서부터 몸을 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한 수험생의 손에 쥐어진 구겨지고 살짝 젖은 듯한 수험표는 극도로 긴장된 심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한 어머니는 수능을 치르러 간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던 대로 해”라며 힘을 실어줬다. 딸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어머니는 자리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입구 옆에서는 수험생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올해로 5번째 제자들을 보내는 상산고 교사 이영아(33)씨는 “시험을 응시하는 것도 아닌데 제가 다 떨려요”라며 “학생들에겐 부담 주지 않으려고 덤덤히 ‘잘 다녀와’라고 자주 말해요. 잘하는 친구들이라 걱정은 안 되는데 긴장되네요”라고 떨리는 마음을 말했다.
친누나를 응원하러 온 김시형(17)군은 “누나가 벌써 수능을 보러 간다니 정말 실감이 안 나요”라며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는데 수능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같은 날 오전 7시 전주 지구 11시험장인 전주한일고등학교에 도착한 수험생들 또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교문 밖에서 멀어져가는 딸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학부모 김영희 씨는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딸이 밤새 선잠을 자서 마음에 걸린다”며 “딸에게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수험생은 “수시전형으로 지원했지만 수능 최저등급을 맞춰야 해서 다른 친구들만큼은 아니어도 긴장되는 건 매한가지다”라며 “수능이 끝나면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도 보고 싶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수험생 입실 완료까지 15분을 앞둔 시각, 정문 앞에는 수험생을 차로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의 차량들이 뒤섞이면서 교통 혼잡이 빚어지기도 했다.
전주여고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는 “한일고에서 수능을 치르는 제자들이 많아서 응원하기 위해 아침 일찍 왔다”면서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고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북지역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도내 13개 시·군, 6개 지구 70개 시험장에서 진행됐으며, 전년 대비 180명이 줄어든 1만 7100명이 응시했다. 이정은 기자·박민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