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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를 잇는 한복, 그 자체가 나의 삶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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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를 잇는 한복, 그 자체가 나의 삶이 됐어요"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2.10.16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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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밈선한복’ 설미화 원장을 만나다

 

세상에 태어났을 당시 그의 주변은 온통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한복 뿐이었다.
주단집을 운영하셨던 어머니 밑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한복은 결국 그의 생활이 됐다.
3대에 걸쳐 한복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여밈선 한복의 설미화 원장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나뭇잎이 하나둘씩 색을 입어가는 어느 가을날 만난 여밈선 한복의 설미화 원장은 해외 한복 패션쇼 준비로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매일이 바쁘지만 한복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행복하다는 그의 얼굴엔 행복이 가득했다.
한복을 만든지 어연 26년. 일과 휴식 구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밑에서 한복의 길은 가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도 무색할 만큼 이제 한복은 그의 업이자 삶이 됐다.
주단집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한복 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가 끝난 뒤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주단집으로 향했지만 밀려오는 손님들에 어머니는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을 이어갔다. 
설 원장는 "사춘기 시절 '나는 엄마처럼 한복을 하면서 바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길을 선택했어요.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고 소풍이나 운동회에도 어머니가 오지 못하시니까 어린 마음에 한복을 원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한복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인연에 설 원장 역시 어머니의 주단집 옆 '여밈선'이라는 한복집을 운영하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젊은 사람이라 한복에 대해 잘 알겠느냐'라는 편견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힌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그의 자산으로 남아 있었고 이왕 시작했으면 전문성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해 전북무형문화재 제22호 침선장 최온순 명인을 사사했다.
이어 성균관대 궁중복식 연구원에서 전통침선을 수료했으며, 건국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전통복식학과 석사를 수료하기도 했다. 또 한지공예와 한복 원단을 활용한 공예까지 한국 전통의 고유한 멋을 알아가기 위한 설 원장의 도전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변해가는 예식 문화와 한복에 대한 인식으로 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주로 맞춤 한복을 입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한복을 대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복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 원장는 "사람들의 인식은 한복은 불편하다. 한복은 예쁘지 않다. 이런 인식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복을 입고 싶지 않지만 결혼식이나 행사 때 다들 입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입는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한복에 대한 인기가 줄어가니 빨리 이 이미지를 탈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이 한복을 입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그 근본적인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서구적으로 변해가는 체형에 맞춰 입체적인 패턴을 도입해 옷테를 살려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한복을 선보이자 이전과 차원이 다른 한복에 이내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그는 "의식을 바꿔야 하는데 항상 고정관념에 멈춰 있기 때문에 한복을 변형을 했더니 어른들은 물론 젊은 신랑 신부들도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디자인 연구를 더 많이 해야겠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젊은층을 겨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진로를 고민하던 딸이 눈에 들어왔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오윤주 씨가 전공을 선택하지 못해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설 원장는 한복 디자이너로서 관련 과를 전공하지 못한 한 때문인지 딸에게도 패션 디자인 전공을 추천했다. 그 결과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이에 2016년 주 루마니아 한국대사관 초청 한복패션쇼를 시작으로 모스크바, 시애틀, 카자흐스탄, 스페인, 이탈리아, 두바이, 영국, 캐나다 등 현재까지도 해외에 한복을 알리고 판로 개척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오는 11월에는 카자흐스탄에 한복을 선보이기 위해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기능올림픽 전북 동우회의 총무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1년 째 도민들을 위해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끝으로 설 원장는 "일각에선 '왜 한복의 전통을 무시하고 변형시키냐'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한복'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의복'이기에 시대에 따라 한복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전통한복을 만드셨다면 2대인 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한복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대인 딸은 이제 한복이 나아가야 할 '신한복'으로서 앞으로의 세대와 세계인들을 겨냥한 한복의 미래를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이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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