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4 12:58 (수)
역사를 바꾼 식물 병의 중요성
상태바
역사를 바꾼 식물 병의 중요성
  • 전민일보
  • 승인 2022.08.04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사냥이나 채집으로 삶을 유지하던 인류가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식물의 병은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문서나 성경에도 식물의 녹병이나 깜부기병, 흰가루병 등이 기록되어 왔지만, 고대인들은 인간이 저지른 불경한 죄에 대한 징벌로 신이 식물을 병들게 했다고 생각해 왔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의 포목상이었던 레벤후크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한 이후로 병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미생물이지만 학문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에는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만도 수천 종이 보고되어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렇게 인류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인류는 수도 없이 많은 병에 시달려 왔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현대인들에게 중세를 암흑기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럽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은 수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역사를 바꾼 식물의 병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를 휩쓴 감자역병으로 인한, 주식인 감자의 대흉작은, 영국의 오랜 식민 통치로 고통받던 아일랜드인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넘어 민족적 자각과 함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

감자역병은 과학적 발전에도 진일보를 이룬 동력이 되었다. 혹독했던 대기근의 시련 속에서 병원균이 식물에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증명되면서 식물병리학이 태동하였다.

식물의 병은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적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반 밤나무 동고병은 당시 미국 목재산업의 큰 축이었던 밤나무를 궤멸시켰다. 당시 100여 종이 넘는 상업용 수목 중 밤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1/4이 넘을 정도였다 한다. 밤나무는 가구, 집, 울타리, 땔감이나 전신주, 철도 침목의 주된 소재였고 밤나무수피는 가죽 제품의 제조에 필요한 탄닌의 주요 성분이었다.

밤나무의 궤멸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밤나무 대신 침목의 원료로 사용된 소나무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방부제 산업이나 탄닌의 대체제 산업이 번창하게 되면서 한 나라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에서 투기 열풍을 불러일으킨 튤립 바이러스 병은, 투기 열풍이 꺼지면서 해상무역과 선진 금융 시스템으로 당시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던 네덜란드의 경제를 붕괴시킨 원인이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스리랑카는 한때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였지만 19세기 후반 커피 녹병이 대발생하면서 커피농장의 몰락이라는 위기를 겪었다. 그 여파로 세계 최고의 커피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영국의 차 문화가 커피에서 오늘날 실론티로 잘 알려진 홍차로 바뀌게 되었다. 식물의 병이 한 나라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었다.

식물의 병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되었는데 한 마을의 수천 명이 동시에 춤을 추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1518년 로마의 댄스 사건이나 1692년 미국의 세일럼(Salem) 지역에서 호밀빵을 먹은 이들이 보인 집단 발작 증세는 호밀 맥각병이 발생시킨 독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의 지도자들은 마녀들이 악마의 저주를 불러왔다고 하면서, 병에 걸린 환자들을 마녀로 지목해 마녀재판에서 처형하기도 하였다. 2003년이 되어서야, 로마 교황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마녀사냥을 비롯한 과거 교회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죄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는 식물 병이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사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식물의 병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부족에 의한 기아가 문제시되고 있고 식물 병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가 전체 수확량의 1/6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라도 식물의 병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가 인류의 삶을 잠식해 들어왔듯이, 식물의 병이 앞으로 인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세원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