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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열정가득...호쾌한 여자풋볼의 세계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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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열정가득...호쾌한 여자풋볼의 세계를 열다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2.04.26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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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학창시절 운동장을 누벼왔다. 하지만 조금 더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보면 운동장의 대다수는 '남자 아이들'의 몫이였고, '여자 아이들'은 구석에서 요리조리 공을 피하며 놀거나 아니면 공과 가까워질 여유도 없이 훌쩍 어른이 되야 했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아본 기억이 많지 않은 여성들이, 공을 '피하기'만 했던 여성들이 공과 한몸이 돼 뛰는 세상을 만났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공과 가까워질 여유와, 마음, 그리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일상을 굴려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는 공과 함께하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전주에서 푸르른 초원을 호령하는 '골때리는 그녀들', FC프리지아가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전주시 효자동에 위치한 한 풋볼 구장. 최근 잔디를 바꿔서인지 푸릇푸릇한 느낌이 멀리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삼삼오오 모여드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은 형형색색 풋살화를 신고 위풍당당하게 경기장에 입성한다.

"발이 가는 방향으로 다리폭을 넓히세요!", "패스 좀 더 강하게 때리세요. 더 움직이고. 패스 상대방한테 더 예쁘게 전달하세요!", "내가 잘 줘야 잘 받는거에요."

십여명의 각기 다른 연령층의 여성들이 일사분란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 제법 본격적이다.

팀복은 아직 없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 마음다해 고른 트레이닝복 안에 열정이 가득하다.

훈련 강도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뽀송뽀송한 얼굴로 경기장에 들어선 그녀들이 땀으로 물광 느낌을 뽐내기까진 30분이면 충분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듯 해도 쉬이 포기가 되지 않는다. '재미'가 '고통'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에 어김없이 모여 '골때리는 그녀들'이 되는 이 팀은 'FC 프리지아'다. 

팀명은 하늘하늘하지만 열정은 프리미엄 리그와 견줘도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공이 좋아서, 공을 차고 뛰는게 좋아서 하나 둘 모여들었다.

"프리지아 꽃 예쁘지 않나요? 지난해 3월에 창단했는데, 팀명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3월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고 천진난만, 앞날을 응원한다 등의 꽃말이 맘에 들어서 팀명으로 정했어요."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한데 모아 운동의 묘미를 일깨워주는 김효영(31) 코치는 팀명을 소개하는 내내 달뜬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여자풋살 1세대다. 풋살이 뭔지도 모를 때, 특히 여성들에게 축구보다도 인지도가 없을때부터 풋살선수로 살아왔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곧잘 잡힐만큼 재주도 있고 실력도 넘쳤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이 재미있는 걸 하는 것이 아쉬웠단다. 풋살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운동과 친해진 적 없는 여성들이 많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호기롭게 풋살팀을 꾸리기로 했다. 문제는 홍보였다. 공이 좋아 운동만 할 줄 알았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서 운동을 전파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알음알음 아는 분들을 통해 소개받기도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 등 우직하게 홍보를 시작했다.

어느정도로 절박했는지, 단골 가게 직원들에게도 운동 한번 해 볼 생각 있느냐며 무작정 말을 건 적도 있단다. 

 

그렇게 입단한 초창기 멤버 최원우(29)씨는 이제 팀 내에서도 발군의 실력자로 통한다. 

"코치님이 어느날 다가오시더니, 운동 잘하게 생겼는데 같이 운동해 볼 생각 없느냐고 하시더라구요. 혼자 가기 쑥쓰럽기도 해 친구를 데려갔죠."

최씨는 그렇게 시작한 풋살이 생각보다 재밋어서 질려할 틈도 없이 매주 나와 팀원들을 독려하고, 개인 기량을 맘껏 뽐내기도 하면서 풋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남편의 소개로 왔다는 이보현(29)씨도 평생 축구공 한번 차본 적 없는 비운동권(?) 소녀였단다. 

"풋살을 너무 좋아하는 남편이 이런 팀이 있다면서 소개를 해주더라구요. 남편 따라 강남온거죠.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스스로 운동날을 챙기게 됐어요."

친구의 꼬드김에 속아 처음 방문한 날에 하필 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고 회상하는 최지후(28)씨는 오히려 우중경기의 매력에 빠져 풋살과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고 고백한다.

"운동 첫날에 비가 오니 설마 운동을 할까 싶어 도망가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대도 운동을 진행하는 코치님의 호령에 힘입어 첨벙거리며 뛰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 운동 한번 같이 하자며 손을 이끌었다는 박진영(33)씨는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목요일만큼은 철저히 사수한다. 목요일 하루를 위해 남은 6일을 보낼 정도라고 하니 말 다했지 싶다.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 운동 좋아하느냐고 묻더라구요. 한번 와서 뛰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제 운동시간을 지켜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듯 FC프리지아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회원들은 축구나 풋살을 화면으로만 보거나, 아니면 좋아했지만 운동장까지 나선 적은 없는 초보들이다.

연령대도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고루고루 분포돼있다. 선수출신은 처음부터 받질 않았다는 김 코치는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선출(선수 출신)을 쓰면 당장은 팀 운영은 수월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팀이 유지될 순 없었을 것 같아요. 숨기려 해도 기량차이는 날테고, 그러다보면 운동하고 싶어서 온 분들이 사기가 떨어질 수 도 있거든요. 그런 갈등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어요."

최근엔 연예인들이 풋살이나 농구 등 구기종목을 하는 TV프로그램들이 부쩍 늘어 풋살에 대한 인식과 호감도도 덩달아 올라가서 모두들 신이 난단다.

게다가 풋살은 단체운동이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고독할 틈이 없단다. 하루하루 쳇바퀴 같은 삶을 살던 그녀들에게 풋살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보다 특별해지는 마법의 묘약같다. 

다양한 좋은 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고 하니 김소연(30)씨는 "텃세가 없어요"라고 단박에 대답한다.

"수영이나 배드민턴만 해도 오랫동안 팀을 지켜온 분들이 묘하게 군기도 잡고, 말도 안붙여주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잖아요. 그런데 여긴 달랐어요. 누가 오건 반갑게 인사해주고, 패스를 멋지게 하면 박수도 쳐줘요. 풋살과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죠."

공과 친하게 지내본 적도, 단체운동에 소속돼 본 적 없는 그녀들은 광장에 모여듦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풋살인이 됐다.

거창한 준비물도 필요 없다. 그냥 자기의 발을 안전하게 지켜줄 운동화 하나면 그간 남자에게만 허락됐던 '끝내주게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진단다. 그걸 더 많은 여성들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란다.

"이제는 단순히 공놀이로 즐기기 보단 1승을 거둬볼까 하는 욕심도 생겼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팀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꼭 입혀드리고 싶어요. 그 뿌듯함과 소속감, 한번 맛보면 놓을 수 없거든요."

이제 창단 1년을 갓 넘긴 FC프리지아는 이제 다음 스텝을 위해 피치를 올릴 준비를 마쳤다.

그들의 땀방울은 여전히 운동장 구석에서 발만 비벼대는, 과거의 자신들과 같았던 여성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이제 운동장의 9분의 1만큼에 만족하지 말자고. 우리에겐 더 넓은 운동장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운동장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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