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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다, 전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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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다, 전주천
  • 전민일보
  • 승인 2022.03.3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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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물끄러미 듣는다. 쏴 -쏴! 여울물 소리. 재잘재잘, 조잘조잘 옹알거린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이야기인 듯, 옛날이야기인 듯, 물소리에서 숨은 이야기들이 기어 나온다.

완판본문화관과 건너편 지금의 세계무형문화유산원 사이를 잇는 돌다리 ‘오목교’를 거닐었다. 무형문화유산원은 옛날 전주수목원 자리였다.

다리 가운데서 동쪽을 바라보면 승암산의 풍경이, 남쪽으로는 남고산성이, 서쪽으로는 남천교 위, <청연루>의 날렵한 지붕이 완산 아래로, 마치 병풍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다리 밑으로 내려와서 예부터 있던 징검돌다리를 건넌다. 서쪽 아래 징검돌까지, 햇살 속을 걷는 동안 내 마음속에도 맑고 고요한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너럭바위 같은 징검돌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물오리 몇 마리와 왜가리 한 마리도 산책을 나와 청량한 물 위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전주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추억이 된 옛 이야기를 ‘소색이는’ 것 같아서 한 바윗돌에 걸터앉아 새삼 그 이야기 소리를 음악처럼 새겨듣는다.

경남 땅이 고향이던 내가 어쩌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전주에서 보낸 인연으로 전주 사람이 되기까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지금은 전주의 관문이었던 상관에서 살고 있기에, 전주천의 발원지인 슬치 고개에서 내려오는 물길인 대흥천을 따라와 한벽교를 거의 매일 지난다.

한벽당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부터 전주천이라 불린다. 아주 먼 옛날에는 대흥천 물길이 오목대를 휘돌아 금암동, 구 전주방송국 앞, 거북바위 앞으로 흘렀다 한다. 오목대와 거북바위에 배를 대었다고 하니, 상전백해가 거꾸로 몇 번이나 뒤집어졌는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고대부터 모든 문명의 발상지가 강 유역이었고, 많은 도시 마을은 반드시 물길을 끼고 있지 않던가. 삼각산 얼음물이 녹으면 청계천 굽이진 냇가에는 여기저기 방망이 소리가 요란했다고 했지. 방망이 소리 잦아들자 한강의 기적은 지금의 서울을 이룩했다.

전주천 또한 전주시를 감싸 안고 마을을 품어 전주의 역사를 이루어왔지 싶다.

처음 전주천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전주천 빨래터 풍경은 전주 십경 중의 하나였다. 한벽당 밑에서 절벽을 친 물길이 한벽청연을 이루고 흘러서 전통문화관 앞쯤에 오면 너른 빨래터가 되었다. 여고 시절 언니 따라 빨래터에 온 적이 있었다. 광목천 홑청 같은 것을 빨면 삶아주는 직업도 있었다.

빨래를 자갈밭에 널어 말리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듯 전주 사람들도 전주천의 빨래터를 이용했다. 지금은 시골 마을 앞의 시냇가에도 가끔 빨래터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 전주 십경의 남천표모(南川漂母)는 온데간데없지만, 여전히 전주천은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전주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을 때, 내 생일 날 그이는 오모가리탕을 사준다고 나를 전주천으로 데리고 왔다. 옛날 빨래터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천변에 천막을 친 평상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때 오모가리가 물고기 이름이 아닌, 오목한 뚝배기 이름인 것을 알았다.

전주 팔미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여름철에 내 생일이 있기에 시원한 나들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모가리탕 집이 많이 사라지고 한 두 집이 명맥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

남천교의 <청연루>까지는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들리는 코스이기도 하다. 날씨 좋은 날은 고운 한복 차림의 젊은 관광객들이 천변을 산책하며 쌍으로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남천교를 지나 한옥마을로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조선 시대의 어느 새마을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일어난다. 오늘도 화려한 한복 차림의 신혼부부(?) 한 쌍을 만났다. 날씨도 추운데 신혼여행 왔는가 하고 물으니 상쾌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전주천을 정화한 뒤, 전주천에서는 맑은 물에서만 사는 쉬리와 멸종 위기였던 야생동물인 수달까지 사는 깨끗한 하천이 되었다. 천변을 공원화하여 철마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니 인근 주민들의 운동 장소와 산책로가 되었다.

천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전주의 역사성을 지닌 남부시장과 장군봉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고, 삼천까지 올라가는 둘레길의 길목마다 전주사람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전주사람과 전주와 인연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주천의 물길 따라 흘러서 삼천을 만나고, 다시 고산천과 합류하고 흘러서 만경강으로 흡수되어 새로운 역사의 바다로 흘러가리라

조윤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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