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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읽은 책들의 성실한 기록, 책방 한켠에 움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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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읽은 책들의 성실한 기록, 책방 한켠에 움텄다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2.03.18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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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의 대명사 김동옥씨를 만나다

기록은 다양한 순기능이 있지만 단연코 '치유'의 기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쓰면서 위로받아 온 존재다.
인류는 또한 경험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기록은 성실해야만 이어올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전주는 기록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도시다. 임진왜란때도 조선왕조실록을 피신시키며 지켜냈고, 완판본 자체도 기록의 역사다.
책은 그 중에서도 기록의 총집합이어서 등장한 이래 세상을 담아왔다. 그러나 분초 단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권의 독서행위는 요원할 때가 많다.
여기 평생 책을 가까이 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총천연색으로 가꿔온 우리의 이웃이 있다.
30년간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적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하며 기록의 가치를 일깨워 준 김동옥(52)씨가 그 주인공이다. / 편집자주

자신만의 독서세계를 매년 전시하고 있는 김동옥(52)씨
자신만의 독서세계를 매년 전시하고 있는 김동옥(52)씨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동옥씨가 처음부터 다독(多讀)을 삶의 기치로 내건 건 아니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모이는 곳인 만큼 책 이외에도 즐길 것이 많았을 터. 

그래도 책은 이상하게 좋았단다. 부모님의 서가에 꽃힌 책등의 반들반들함이 좋았고, 끌리는 제목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읽어내려가는 재미는 생각보다 컸다.

"제가 독서노트를 오랫동안 써오다 보니 문학소녀 였을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학창시절엔 적당히 책을 즐겼던 것 같아요."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 가고나서야 책에 대한 애정이 물꼬가 터진듯 몰려들었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서점은 김씨가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물리적·심리적 지원이 돼줬단다.

부모님에게 받는 용돈의 3분의 2는 고스란히 출판업계로 흘러들어갔다. 책방지기가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 아버지가 한마디 보탰다. "책방하면 오히려 책을 못읽어."

다재다능한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스스로 특별히 잘하는게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책은 달랐다.

책은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접근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 큰 노력 없이도 다른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단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1992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간 읽은 책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진 않았다. 구구절절 감상을 적어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그냥 제목과 출판사만 딱 적고 덮은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을 멈춘적은 없었다.

쓰다보니 글씨체도 정갈해지고, 글씨만 가득한 노트가 재미없어 이것저것 스티커도 붙여보고 박스 모양도 만들어보고 아이디어를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결혼후 찾은 전주에서도 독서노트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 서학동에 사는 예술인들과 연을 맺고나서 독서노트를 넘어 읽은 책에다가도 예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마침 2015년은 다이어리 꾸미기, 즉 다꾸의 시대가 돌아온 첫 해여서 눈으로도 충만한 예쁜 독서노트들이 만들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책 사는 돈은 아끼지 않는 편인데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인터넷 서점만 이용하다보니 동네책방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동네책방의 추억을 더이상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집 근처 책방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0권 살거 9권 사면 되겠더라구요. 동네 책방이 사라지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거든요."

그러다 단골이 된 책방지기에게 독서노트를 보여주니 깜짝 놀라며 예상치 못한 찬사를 받았다. 책방지기는 이런 걸작(?)을 혼자 보면 안된다고, 당장 전시에 나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책방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손님들이 발길을 줄여가던 차에 책방과 잘어울리는 전시 아이템을 만난 셈이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딴 '제1회 동옥서재展'을 2021년 처음 마련했다. 책방 한켠에 작은 책상을 두고 그간 써왔던 독서노트부터 올해의 책 등을 알차게 올려뒀다. 

책을 사러 들른 손님들은 심미적인 디자인과 그 안에 담긴 김씨의 서평에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독서노트를 써본적 없는 사람들에게 넘치는 동기를 부여했다.

전시는 단순히 예쁜 노트 구경을 넘어 30년이 넘게 책이 좋아 흔적을 기록해 온 사람에 대한 경외감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그저 책이 좋아 기록을 멈추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이 만들어 낸 작은 기적은 올해도 책방 한켠에 조용히 움텄다. 그리고 아마도 기록의 향기는 꽤 오래 유지될 모양이다.

가정을 일구며 정착한 전주가 점차 책의 도시로 변모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는 김씨는 요즘말로 '책 덕후'의 자질이 농후하다. 

"전주시가 진행하고 있는 책쿵 사업 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깝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기뻐요. 요즘은 오히려 이 사업이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밤을 보내기도 해요."

잘하는게 없어 책 읽는 재미를 찾았다는 김씨의 말은 이제는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찬연하게 펜을 잡아 온 그 자체가 충분히 반짝이는 재능이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만들어 낸 조용한 기록을 한번쯤 따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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