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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미학, 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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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미학, 老馬之智
  • 전민일보
  • 승인 2022.01.04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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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지혜와 숙련된 경험은 노년의 자랑이다. 그래서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라”, “늙은 쥐가 독 뚫는다”고 했던가 보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들이다. 성경에도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했고, 부처도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이름이 널리 퍼지며, 지혜로운 사람의 섬김을 받는다.”라고 가르친다.

또 우리에게도 익숙히 전해오는 말을 통해 어른들의 지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굶긴 말에 먹이를 주었을 때 먼저 먹는 녀석이 새끼말이다”, “물에 뜨는 쪽이 위쪽이다” “한 다발의 새끼를 그대로 불에 태우면 그것이 바로 재로 꼬아 만든 새끼줄이 된다”는 그 단면이다.

위 말들은 수나라에서 고구려에 연거푸 낸 문제들이다.

즉, 크기가 같은 말의 어미와 새끼의 구별, 굵기가 똑같은 나무토막의 상하 변별, 그리고 태운 재로 새끼줄을 한 다발 꼬아서 바치라는 난제들에 대한 해답은 박정승의 모친에게서 얻어낸 지혜다.

이처럼 어르신은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지혜의 등불이었기에 나라에서는 종종 그분들의 머리를 빌리곤 했다. 잔치를 벌려 훌륭한 경험과 지혜를 들었다는 ‘걸언례(禮)'가 대표적인 예다.

어른들은 두려움도 없고 이해타산도 가리지 않는 나이이므로 제도와 질서의 호불호를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어 선순환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는 아메리칸 인디언에서도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을 향해 덮쳐오는 거센 불길에 노 추장은 어찌할 줄 모르는 부족의 구성원들에게 맞불을 명한다.

타고난 자리는 안전하였기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 나이가 가르쳐준 지혜였던 것이다.

이처럼 도서관 하나만큼의 철학이 깃들어 있는 그들은 세상에 밝은 지혜를 많이도 선사했다.

공자의 ‘춘추’를 비롯해 ‘시경’, ‘서경’, ‘주역’ 등의 찬술과 노자의 ‘도덕경’ 그리고 맹자의 ‘맹자’는 모두 노년의 걸작들이다.

독일의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고, 피터 드러커 역시 90의 나이에도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이외에 토스카나는 90세까지 20C의 대표적 지휘자로 활동했고, 루빈스타인도 89세에 카네기홀에서 연주했으며, 파블로스 카잘스 역시 95세임에도 하루에 6시간씩 첼로를 연습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화가 피카소 또한 92세까지 창작에 심취했으며, 에디슨 역시 92세의 나이에도 발명에 몰두했다. 모두들 나이에 상관없이 열정을 불태웠던 노장들이었다.

이상과 같은 많은 기여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노인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여 매우 서글프기까지 하다.

정보통신 등 인터넷 매체의 발달과 급격한 물신숭배 풍조에 따라 이리저리 밀리며 천대받는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

장수 시대와는 걸맞지 않게 개저씨(Gaejeossi), 꼰대(Ggondae), 영택이(영감탱이) 등 각종 야유와 폭력, 편견과 갑질, 비하와 폄하 등 부당한 처사가 사회적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진한 청색의 바탕은 연한 남색이고(靑), 차가운 얼음물은 맑은 샘물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그렇게도 터부시하는 어르신들이 바로 남색이고 맑고 밝은 원전수인 것이다. 저절로 청색되고 차가운 얼음물 된 것이 아니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깊은 골짜기에 가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철부지들의 우쭐한 만용과 졸부근성이 도를 더해간다. 공해 문제로까지 인식되는 수준에 이른 노인폄하는 어디까지 추락할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가수는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고 목청을 돋우기도 한다.

아무리 물질 문명이 발달하고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해도 디지털화 할 수 없는 것이 지혜다.

“몸의 무게는 잴 수 있어도 자성의 무게는 잴 수 없다. 체중에는 한계가 있지만 자성에는 한계가 없음이다“.

전쟁 후 길을 잃은 병사들에게 늙은 말이 안내하여 무사히 제나라로 귀환했다는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가 천대받고 사장되어 안타깝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도서관 하나씩이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지혜가 오늘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를 만든 원동력이었다.

세계가 글로벌화하면서 더욱 복잡미묘한 문제가 산재한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농익은 어르신들의 지혜가 절실하다.

평소 늙고 병들었다며 늘 구박하던 젊은 쥐들이 마침 큰 솥의 음식을 꺼내먹기 위해 통사정하며 늙은 쥐의 꾀를 빌리는 고상안(1553~1623)의 수필집 ‘효빈잡기’는 오늘의 우리 현실 그대로 된 판박이다.

“어른에게 자문을 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는 진리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생각할수록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다(老者安之)”는 공자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아리고 유난히 크게만 들린다. 노자안지! 노자안지! 노자안지…

양태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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