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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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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부르는 이유
  • 전민일보
  • 승인 2021.12.16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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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고방식은 보통 사람과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천은 이상적으로” 주변 열강은 물론 독일인 스스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통일은 그런 방식을 통해 성취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방향성은 그 반대로 보인다.

흉악한 살인범 권재찬이 감형을 받아 사회에 복귀해 두 사람을 더 살해했다. 또한 경찰에 신변보호까지 요청한 또 다른 피해자 가족은 예고된 살해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사법부나 경찰만 탓할 수도 없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이 아닌가? 거기에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수많은 관련 기관 단체들의 존재감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박한상과 연쇄살인마 강호순, 유영철은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채 여전히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존파는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조금만 버텼으면 그들도 야만적인(?) 사형집행에서 벗어나 천수를 누릴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다고 신속하고 정확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권재찬을 공개하자마자 그 가족들 신변보호에 나섰다. 아름다운 일이다. 권재찬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지구상에 이런 인권의식을 실천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미국 같은 미개한(?) 국가는 자녀를 차에 놔둔채 잠깐 쇼핑을 했다는 이유로 젊은 한국인 판사부부를 구금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봤던 자세로 사진을 촬영하고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나까지 그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물론 한국 언론이 아닌 외신에서다.

인권선진국인 한국에서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선(善)한 지도자가 선(善)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수많은 정책과 과업들이 악(惡)한 결과로 돌아오는 일은 단지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의 책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택동(毛澤東)이 참새를 박멸(撲滅)하라 명령한 결과는 수많은 해충의 범람이었다.

모택동에겐 참새가 먹는 곡식이 아까웠겠지만 그 결과 처절한 흉작을 초래하고 수많은 인민이 굶어죽었다. 그의 결정은 중국 인민들을 위한 선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정책의 적잖은 방향성은 ‘생각은 이상적으로 실천은 현실적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적인 정책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문제는 그 출발부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전제가 인간의 불완전함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부합하는 체제가 있다면 민주정치보다는 공자(孔子)가 얘기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나 플라톤(Plato)의 철인군주(哲人君主)체제에 부합한다. 그것은 결국 일반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불신과 혐오의 출발은 거기서 부터다.

인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굳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어도 모를 사람이 없다. 어떤 기관이나 단체도 자신들의 존립근가가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의 존립근거 역시 인권이다. 역설적으로 인권이 완벽히 보장된 사회라면 그들의 존재근거는 사라진다.

‘피해자 인권은 어디가고 왜 가해자 인권만 그토록 챙기는가?’라는 물음에 고귀하고 성스러운 담론으로 답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가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에 있다. 인권 영역을 좀 더 넓혀보면 내로남불에서 예외가 아니다.

중국 인권문제야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의 반쪽인 북한 인권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식이 무너지고 피안(彼岸)의 고귀한 담론만이 남게 되는 사회의 안정성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존파는 죄 값을 치렀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몫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에 있다.

“혐오를 혐오한다.” 의미 있는 말이다. 그런데 묻고 싶다. 혐오를 부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거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혐오를 혐오한다.’는 말로 모든 것이 정리 될 수 있는가.

유영철이 유일하게 사랑했다는 아들과 권재찬 가족 인권이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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