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00:53 (금)
김장 무 몇 개나 하나요
상태바
김장 무 몇 개나 하나요
  • 전민일보
  • 승인 2021.12.01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이 제 빛깔을 잃고 누렇게 바래진 채 힘없이 나뒹굴고 있다. 어느새 가을이 저만치 달아나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나는 임실 댁 밭에서 캐어져 지금은 전주 매곡교 옆 둑길에 누워 있다. 어떤 부부가 우리 밭주인 아주머니와 임실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고향도 아니면서 한때 살았다는 이유로 그만 못생긴 나를 차 트렁크에 싣고 말았다.

맘씨 좋은 임실 밭주인 아주머니가 무만 팔고 남겨뒀던 무청을 다섯 단이나 꾸역꾸역 비닐 포에 밀어 넣어줬다. 솔직히 말해서 밭이 박토라서 우리 무들은 모두 못생겼다.

저쪽 다리 끝에 있는 무는 빨간 황토 흙으로 분단장했는데 동글동글 통통하여 맛도 좋고 물도 많단다. 그래도 공짜로 얻은 무청이 반가운 아저씨는 신나게 바퀴를 굴리며 구이 집으로 돌아왔다. 한 묶음 묶여 있던 6포기의 배추와 옆집의 잘 생긴 배추 2포기도 함께 사 왔다.

‘김장’이라고 하면 모두가 배추만 생각하나 보다. 김치의 종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배추로 만든 배추김치, 무로 만든 무김치, 깍두기, 알타리, 그 외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등 수없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배추만 생각하고 “김장 몇 포기나 해요?”라고 묻는다. 다행히 구이 아저씨 댁에선 배추보다 무를 더 좋아한 것 같다.

배추김치라고 저 혼자 김치가 될 수는 없다. 우리 무가 생채가 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갓과 파와 마늘, 생강들을 만나 서로의 성질을 포기한 채 한데 버무려져 배추의 속에 넣어야 맛있는 배추김치가 된다. 배추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무의 도움이 없으면 맛있는 김치로 부활할 순 없다.

그래, 부활이다. 누가, 배추가 김치가 되려면 여러 번 죽어야 한다고 말했던가? 난 끝까지 죽음으로 표현하진 않을 것이다. 배추가 우리 무를 만나면 환상의 짝이 되어 환생한다. 부활하는 것이지 죽긴 왜 죽나?

옆집에서 김치를 담갔는데 국물이 너무 없고 짜다고 걱정을 했다. 구이 마님이 무를 채로 썰어 배추 사이사이에 많이 넣으라고 알려줬다. 옆집 아주머니는 잘박잘박 국물이 나오고 싱거워졌다며 무가 최고라고 기뻐했다. 그것 봐라. 짠 것도 싱거운 것도 해결해 주는 것이 우리 무가 아닌가.

부지런한 안주인이 무청까지 두[二] 통을 꼭꼭 눌러 무김치를 담아 놓더니 남은 무청을 삶아 시래기로 말리고 있다. 무청은 뼈를 튼튼히 하고 장내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대장암도 예방한다나. 우리의 진가를 알아주는 안주인이 고마울 뿐이다.

이 댁에서 김장한 줄 알았는지 저녁에 손님이 고기를 사서 왔다. 겨자를 푼 물에 무 쌈채를 만들겠다고 나를 잘랐다. 그런데 내가 박토에서 자란 탓에 내 몸집이 단단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칼질하는 마님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이 댁 부부도 물렁한 사람들인 모양이다. 좀 사근사근한 무를 사 올 일이지 우리 같이 단단하고 못생긴 무를 사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약효는 어느 무 못지않게 변함이 없다. 체하거나 속이 답답할 때 무의 즙을 내어서 먹으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릴 것이다. 아, 그래. 무즙! 해독 작용을 하므로 예쁜 아가씨들 얼굴에 난 여드름에 바르면 쏙 들어가고 만다.

무는 중국 당나라 때 채소에서 한방약의 생약으로 격상된 식품이다. 이명증엔 면봉에 묻혀 귀안을 골고루 칠해주면 귀가 안 울고, 담배 니코틴도 중화시켜준다니 희소식이 아닌가?

무즙에 꿀을 넣어 먹으면 감기 폐렴 편두통도 낫는다. 고기나 생선회 먹을 때도 무즙에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일 것이다.

‘잘 말린 무말랭이는 인삼보다 좋다.’라는 옛말도 있다. 생 무보다 15배나 영양가가 높다는 걸 알기나 할까?

밤에 군것질이 하고 싶거든 다이어트에도 좋은 우리 무를 먹어보라 권하고 싶다. 맘대로 먹되 트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고약한 냄새라니…….

이 정도면 우리 무의 진가(眞價)를 알 것이다. 배추도 좋지만, 우리 무의 공을 잊지 말고 이젠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김장 무 몇 개나 하나요?”라고.

양영아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제이케이코스메틱, 글로벌 B2B 플랫폼 알리바바닷컴과 글로벌 진출 협력계약 체결
  • 맥주집창업 프랜차이즈 '치마이생', 체인점 창업비용 지원 프로모션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