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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죄·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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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죄·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해야
  • 전민일보
  • 승인 2021.11.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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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은 제311조에서 모욕죄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공연히’는 세 명 이상 불특정 다수 앞을 의미한다. 또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가 제기되는 친고죄이다. 단순한 욕설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할 경우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표현이 과연 모욕죄가 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모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욕이라는 단어의 해석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단순한 욕설, 경멸적 감정의 표현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여기에 모욕죄에 대해 수사기관 간의 판단, 법원의 심급에 따른 결정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국가기관의 의견도 달라질 수 있는데, 일반 국민 입장에서 특정 표현의 모욕죄 해당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모욕의 흔한 예는 ‘욕’이다. “야이 OOO년아!”, “××새끼야”, “별 거지 같은 놈이네!”와 같은 욕은 모욕에 해당한다. 모욕은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없다. “뚱뚱해서 돼지 같은 게”, “그 개새끼” 등(실제 판결 사례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판례에 의하면 “야, 이따위로 일할래.”, “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는 설사 ‘모욕감’을 느꼈더라도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형법은 307조 1항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해도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누가 누구하고 ‘섬싱’이 있다고 말하거나, ‘미투’나 ‘갑질 피해’를 폭로해도 가해자한테 고소를 당하고 처벌을 감수해야 했던 이유다. 이에 여성운동계 등을 중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명예훼손죄 역시 피해자가 처벌에 관한 의사가 있어야 하는 친고죄이다.

국회에서는 지난 9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됐다. 일부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사생활의 비밀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사실의 적시’로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형사 처벌하는 경우가 드물어 국제기구도 폐지를 권고한 상태다.

실제 2011년 유엔인권위원회, 2015년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 폐지를 권고했다.

다시 모욕죄로 가보자. 모욕죄의 성립요건 첫 번째로는 ‘피해자의 명확한 구분(특정성)’이 있다. 단체 대화방,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의 모욕적인 행위의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욕설 및 경멸의 의사 표현을 했지만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면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 번째 성립 요건으로는 ‘공연성’이 있다. 즉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메신저의 단체 대화방 혹은 SNS 상의 댓글 또한 공연성을 띄며,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 있는 공간에서는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세 번째로는 그 행위가 ‘모욕적(비방 목적 유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욕적이라는 기준은 매우 모호하지만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이어야 한다는 요건이다.

지난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린 30대 청년이 모욕죄로 고소당했다가 지난 5월 고소가 취하됐지만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독재 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사소한 감정을 드러낸 표현을 처벌하는 모욕죄는 위헌론과 폐지론에 휩싸여 왔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수사와 재판을 받고 형사처벌 될 수 있으므로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위축된다는 점에서이다.

물론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모욕죄를 떠나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대통령이 무슨 동네 북인가? 아무리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고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아도 국가지도자를 존중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이제 모욕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폐지를 서둘러야 한다. 둘 다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비판 활동까지 위축시킨다. 처벌의 기준도 모호하다.

헌법재판소가 모욕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가 법안 폐지를 통과시키면 헌재도 따라가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법대로 하자’는 소리를 잘한다. 그러나 법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오히려 다양한 사회적 병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가 법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형사처벌은 최소한의 법적 강제일 뿐이다. 국가가 법률로써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고, 또한 수시로 제정된 법률을 뒤집는 새 법률을 입법하면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가 될 것이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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