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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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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를 유지해야 할 이유
  • 전민일보
  • 승인 2021.11.17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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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얼마나 될까? 때로 글을 마무리하고 내가 정한 제목을 검색해 본다.

적잖은 경우 누군가 그 제목을 먼저 사용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언젠가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의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것을 목도(目睹)하는 것도 그렇다.

조선의 사림과 현재의 586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놓고 쓰고자 했던 작업은 나보다 부지런한 작가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문에서 얘기한대로 인간 삶의 모습은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오늘 586 모습에서 조선 사림(士林)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은 분단 상황을 제외하면 조선건국초기를 지나 세종(世宗)과 성종(成宗) 대의 최전성기 모습과 닮았다. 나아가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전개되는 것도 그렇다.

국민개병(國民皆兵)의 원칙을 흔드는 모습도 그렇다. 세종대 여진족(女眞族)을 상대로 4군 6진을 개척하고 왜구 토벌을 위해 대마도 원정까지 나설 수 있었던 조선의 힘이 어떻게 소멸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 필요하다.

임진왜란을 초래한 무능한 군주로 평가받는 선조(宣祖)가 수많은 반대를 무릎 쓰고 이순신(李舜臣)을 파격적으로 등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조를 비롯한 당대 조선 집권층은 전쟁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백성 누구도 전쟁 준비가 가져올 어려움을 감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자질 중 하나로 ‘인색함’을 얘기한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 지도자는 누구도 그 악역에 관심이 없다. “세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는 그 자신감에 대한 책임은 그 발언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어쩌면 그 마지막 남은 달콤한 열매가 징병제가 아닐까한다.

국민개병은 공동체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상징이자 힘이다. 그것은 결코 모병제가 대체할 수 없는 백신이다. 그 어떤 뛰어난 용병(傭兵)도 국민개병에 의한 군대에 맞설 수 없다.

대통령과 재벌 아들은 물론 손흥민과 방탄소년단 같은 세계적인 스타에게도 예외가 없다.

군대문화 잔재를 청산하자고 하지만 제대한지 30년이 지나 되돌아보니 그 시절만큼 평등을 가르쳐 준 삶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개병은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관념이 아닌 현실로 실현한다.

훈련소와 자대에서 가난한 소시민의 아들은 사회에서는 감히 만나볼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들에게 명령을 하고 지휘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은 사회의 노블레스(?)에게도 자긍심을 선사한다. 공동체 의식 형성과 그것을 지키는 것에 대한 소명을 깨닫는 데 이보다 더 귀한 자리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병제는 여러모로 편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 받을 달콤함을 가지고 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가지 않는 군대, 조선후기의 모습이 그랬다.

국민개병을 회피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다. 그 중엔 성공한 사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성공적 삶이 아니다. 불가피하게 예외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다하지 못한 의무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부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도 낙인 효과까지 없어지진 않는다. 여러 이유로 군역을 다하지 못한 남성 중 상당수는 군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를 수 십 년이 지나서 까지도 안고 살아간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로마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겨진 군인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하는 가장 큰 항목은 한국전 전사자 유해 수습을 위한 것이다. 미국은 군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이 조국을 위해 전사할 수는 있지만 조국이 당신을 잊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로마군이 상대에게 요구한 첫 번째 조건은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에 의해 포로가 된 로마군의 송환 문제였다. 세계 각지에 노예로 있던 로마군 노병은 개선(凱旋)병으로 로마에 귀환했다. 국민개병은 평화를 위한 대전제이기도 하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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