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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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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찬가
  • 전민일보
  • 승인 2021.09.0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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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연인인 동시에 체력과 인내력을 시험하는 무대다.

덕유산 종주(29.2km)가 지리산 종주(35. 5km)보다 거리도 짧고 해발도 낮아쉬울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실전에서 덕유산 줄기가 더 출렁거리며 산 멀미를 느끼게 한다. 내 마음을 지리산에 더빼앗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번 초가을 지리산 종주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출발점인 성삼재부터때 이른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마음을 들뜨게 했다.

등산로에 나뒹구는 도토리와 활짝 핀 구절초, 들꽃들도 가을정취를 듬뿍 안겨줬다.

파란 창공과 구름을 머리에 인 노고단과 요염한 여인의 젖무덤을 형상인 반야봉의 아름다운 단풍과 운해가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그런가 하면, 연하천부터는 가을 정취를 즐기는 산꾼을 시샘하듯 추적추적 가을비를 뿌렸다.

잔뜩 기대했던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형제봉의 낙조와 벽소령의 창공으로 떠오르는 월출마저도 구름 속에 묻혀버렸다.

이튿날 새벽녁엔 거센 강풍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출이 촛대봉 위로 구름바다를 헤치고 찬란하게 떠오르며 장엄함을 뽐내기도 했다. 지리산은 이렇게 인생 여정만큼이나 변화무상했다.

천왕봉이 가까워져 올수록 단풍은 점입가경이었다.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기암괴석들과 함께 어우러진 만산홍엽이 내 가슴마저 태워버릴 기세다.

남명 선생이 일찍이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天鳴"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산으로 그 장엄함을 칭송했듯이 지리산은 언제 그 위용을 자랑한다.

3대에 걸쳐 적선하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는 천일출, 진홍빛으로 물든 반야 낙조, 희고 맑고 푸른 벽소 명월, 연진 여인)의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세석 철쭉, 구름바다를 이루는 노고 운해, 피아골 옥류와 어우러진 직전 단풍 등 지리 10경은 고행을 감내하는 산꾼들 만의 소유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하다.”라고 쓰인 천왕봉 정상석을 연인처럼 반갑게 껴안았다.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산하를 굽어보노라니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게다가 땀에 젖은 옷을 산바람에 말리노라면 뿌듯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아마도 산꾼들이 고행을 감내하며 산을 찾는 것이 바로 이런 맛 때문이려니 싶다.

때마침 바람에 실려 온 운해가 선경을 연출한다. 이곳이 바로 선계仙界가 아닐까.

오찬을 즐기고 있노라니 하얀 한복에 흰 수염을 날리며 보도 당당하게 올라오는 노인이 있었다. 지팡이까지 갖춘 모습이 뭇 사들의 시선을 끌 만했다. 전혀 세속世俗에 물들지 않고 무욕한 신선처럼 느껴졌다.

산꾼들이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외치며 덕담을 했다.

그 신선은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도대체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아무래도 “인생은 육십부터를 인생은 팔십부터”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하산지점인 백무동 주변의 황금빛 벌판과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가을| 정취에 흠뻑 젖게 하였다. 뒤돌아보니 지리산이 손짓하며 또다시 오라고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지리산에 들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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