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8 18:11 (목)
뒷모습
상태바
뒷모습
  • 전민일보
  • 승인 2021.03.12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0월 대학 동기들과 부부동반 모임으로 유성 근처 장백산휴양림에 갔을 때, 나는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나이에 비해 얼굴도 팽팽하고 외모도 괜찮은 편인데도, 카메라 앞에서는 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표정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가장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모두 뒤로 돌아서게 하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사진을 공유했더니, 일행 모두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뒷모습 사진이 최고의 작품이라면서 의외로 좋아했다.

얼굴과 가슴이 보이는 앞모습은 화려하고 변화무쌍하지만, 어깨와 등이 보이는 뒷모습은 정직하고 속임이 없는 것 같아서 좋다.

앞모습은 살아온 과거 보다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지만, 뒷모습은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과거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사람이 어떤 성과를 낼 때, 앞모습은 영광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뒷모습은 같이 수고해놓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천사 같아서 좋다.

뒷모습에는 비밀이 있어 좋고, 여운이 있어서 좋고,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아서 좋고, 속이지 않아서 좋고, 그래서 어느 누구나 뒷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싸움을 할 때도 아군과 적군은 서로 앞모습을 보고 있지만, 아군끼리는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

공동체나 대중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도 서로 앞모습을 보고 간다면 엉망이 되어 성과를 낼 수 없지만, 뒷모습을 보고 간다면 계획대로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좁은 길에서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뒷모습을 보면서 가야 제대로 갈 수 있듯이, 삶속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끝까지 같이 가려면, 그 사람의 뒷모습, 즉 꾸밈없는 진심을 믿고 따라가야 동행에 성공할 수 있다.

운동선수를 뽑을 때도 얼굴이나 가슴이 보이는 앞모습을 보지 않고, 몸의 균형과 힘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어깨와 엉덩이와 허벅지와 장단지가 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평가한다고 한다.

이토록 위대한 뒷모습이 우리 마음속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중세 서양화가 중 뒷모습만 그리는 화가가 있었다는데. 아마도 그 화가는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 위해서 뒷모습을 작품 소재로 택했을 것이다.

앞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금방 식상할 수 있지만,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또한 앞모습은 누군가 나를 알기 위해 다가오는 모습이지만, 뒷모습은 누군가 나를 알고 떠나는 모습이기에, 뒷모습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그 뒷모습에서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살아생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어머님이 날마다 일터로 나가사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님의 뒷모습 속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까운 지인과 헤어질 때는 가식 없고 있는 그대로만 보이는 상대의 뒷모습과 상대의 뒷모습에 비춰진 내 모습도 스캔해서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

가족여행 중인 친구가 지난주 토요일 제주도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뜨는 해를 맞이하며 찍은 앞모습 사진과 지는 해를 보내며 찍은 뒷모습 사진을 보내왔다.

일출광경을 바라보며 찍은 앞모습 사진에서는 ‘지금 무척 행복한 친구 가족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고, 일몰광경을 바라보며 찍은 뒷모습 사진에서는 ‘지금까지 아빠도 수고했고, 엄마도 고마웠고, 두 딸도 잘 자라줘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서로 가족이 되어줘서 행복하고’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김삼기 시인,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칼럼] 감기 이후에 생긴 피부발진, 알고 보니 어린이 자반증이라면?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여유 슬림컷' 판매량 급증! 남성 건강 시장에서 돌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