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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충절 깃든‘황극단’,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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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충절 깃든‘황극단’,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1.01.19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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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전북의 혼이 살아있는 이석용 의병장을 만나다
이석용 의병장 (1874~1914)

우리는 역사를 말할 때 흔히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인용한곤 한다. 이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지은 1924년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말로 알고 있었으나 조선상고사에 있는 말은 아니다. 
또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둘 다 기록에는 없다. 다만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말할 때 쓰여지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박은식 선생은 나라는 ‘형’이고, 역사는 ‘신’이라고 했다. 형은 형식을 말함이고, 신은 정신을 이름이다. 모두 나라와 역사를 강조하는 말이다.
한 나라와 한 지역의 정신은 국가와 사회를 지탱해주는 근간이다. 이스라엘인들이 나라를 잃고 수천년을 떠돌아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는 것이 정신이다. 정신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다. 올바른 정신을 갖는 일,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편집자주]

 

황극단이 있었던 전주 동물원 방향 어린이 회관 맞은편, 지금은 도로개통으로 조성될 보훈공원 부지에 해체돼 옮겨져있다.

도로개통으로 알게 된 ‘황극단’

역사에 대한 교육이 왜곡돼 가르쳐지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잘못 가르쳐지고 왜곡돼 받아들여온 우리의 역사가 이제라도 역사의 교훈이 되도록 바로잡아지는 일 또한 가치있는 일이다.

황극단은 몇몇의 정치인과 보훈 관계자만 알고 있는 김구 선생 등 33인을 모신 제단이다. 이 제단은 전주 동물원 방향 어린이회관 맞은편에, 시민들은 모르는 그늘진 계단 위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제단의 돌이 뽑히고 땅이 파헤쳐지는 것을 목격한 한 시민이 “무슨일인지 궁금하다”며 제보를 해왔다.

송천동 1가 235-6번지 보훈공원 조성지 한쪽에 보관중인 황극단 해체석
송천동 1가 235-6번지 보훈공원 조성지 한쪽에 보관중인 황극단 해체석

알고 보니 전북대학교 기숙사 뒤편 연지마을 앞으로 도로가 새로 뚫리면서 황극단이 해체돼 어린이회관 옆 추념탑 부근에 조성중인 보훈공원으로 단을 옮기는 중이었다. 

이것은 전주시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다. 전주시 보건복지과를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정재 이석용 의병장에 대해 겨우 알 수 있었다. 증손자인 이정하 씨와 우여곡절 끝에 겨우 통화가 됐다. “구국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 일에 공무원과 기자가 따로 있냐‘고 설득하고 나서야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증손자와의 통화를 통해 임실군청에 관련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임실군청 문화관광과 김철배 주무관을 통해 황극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황극단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황극단은 지난 2003년 9월 15일에 만들어졌다. 18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늘진 곳에서 방치 아닌 관리, 관리 아닌 방치 수준으로 존재해 오다 도로가 나면서 비로소 양지 넓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황극단이 처음 조성된 곳은 1955년 해방 후였다. 덕진공원에 처음 만들어진 황극단은 친일세력에 의해 파헤쳐졌고, 이후 역경을 겪으며 후손들에 의해 재정비된 것이 2003년이다.

현재 생존해있는 증손자 이 씨가 십수 년 간 관리해오다 5년전 쯤 전주시 보훈 관련 단체로 이관돼 1년에 2~3번 제초 작업을 하다보니 여름철에는 풀이 무성해 관리가 안 되고 방치된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제보한 시민 말에 의하면 건지산 운동차 한 번씩 지나다니다 보면 잡초가 무성해 뭐하는 곳인지 몰랐다. 차가 다니는 도로와 인접해도 인적이 드문 곳이니 잘 모를텐데, 계단 위로 있어 뭐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씨 말에 의하면 황극단에서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난 2003년 9월 황극단이 만들어질 때 기록해놓은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다.

황극단(皇極壇)은 전북 임실 출생으로 호남에서 거병한 한말의 대표적 의병장인 정재 이석용 의병장의 장남인 청암 이원영 애국지사가 광복이 되자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부친인 이석용 의병장과 순국열사 등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고종황제비‘, ’대한의장비‘, ’광복정령 33인추억비‘ 등을 8년 동안의 요강 행상과 전답 2600여 평을 팔아 현 전북대학교 내에 1955년 5월 5일에 건립하였으나….라고 설명돼있다.

황극단은 1955년에 전주덕진공원 내에 조성됐으나 일본 경찰국장이 부임하면서 파헤쳐지는 일이 발생했다.

국가로부터 예우를 받아야하는 항일투사의 제단이 인적없는 곳에 방치되다시피 했었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다가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해 가능했고, 역사인식의 중요성이 아로새겨지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됐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의 제단과 기념비가 그늘지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곳에서 세월을 보낸 단 하나 이유는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청산돼야 할 역사적 오점이 청산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있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여전히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어도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예우받기 보다는 천대받고 외면당하며 가난과 싸우며 살아온 독립투사들의 후손이 그렇듯이 황극단도 인적 드문 곳에서 수십년의 모진 세월을 버텨낸 것이다.

반면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친일적 시를 쓴 친일파 김해강 시인 등의 동상과 시비는 덕진공원 입구 중앙에 버젓하게 서 있다. 이것이 우리역사의 오점이며, 청산돼야 할 과제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감옥에 보낸 친일파 최대교 검사의 동상도 위엄을 자랑하며 김해강 친일파 시인 시비 옆에 나란히 있다.

친일파가 쓴 현판과 동상, 시비 등이 전북과 전주 대표 공원인 덕진공원에 버젓이 위엄을 자랑하고 서있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투사들의 영령들은 죽어서도 그늘지고 인적없는 곳에서 빛조차 못 보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다. 

덕진공원에 버젓이 서있는 친일파의 동상에는 광복 관련 단체가 단죄비 하나를 세워둔 게 전부이다. 이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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