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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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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21.01.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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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경험하며 산다. 몸이 아플 때는 병원을 드나들기 마련이다. 간호사, 흔히 백의의 천사라 부르지만, 근무여건이 전쟁터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처럼 열악하기 그지없는 곳이 병원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실려 오는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그들로서는 늘 긴장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곳이다.

최근 하정아 님의 수필집 「그레이스 피어리어드(grace period)」를 읽었다. 30여 년 전 미국(LA)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 분이다. 당시 신문사와 잡지사의 편집기자로 일하면서도 1989년에는 미주 크리스쳔문학을 통해 미주문학에, 1994년에는 문학세계를 통한 한국문단에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다. 뜻하는 바가 있어 간호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종합병원 수술방 회복실에서 일하면서도 병상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중심으로 수많은 책을 저술하고 있다.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때가 많다. 정신이 피폐한 환자를 돌보는 일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겉보기는 정상인듯 멀쩡해 보여도 어느 순간 이상한 행동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루는 신체건강한 젊은 C형 간염환자가 의료물품을 요청하기에 무심코 병실에 들어갔다가 짐승처럼 달려드는 환자에게 간신히 위험을 모면하기도 했단다. 어떤 에이즈환자는 주사를 맞다가 갑자기 바늘을 빼서 간호사의 몸에 들이대는 일도 있었다니 이처럼 위험한 현장이 어디 있을까?

성격이 밝고 정상적인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존경심으로 대하지만 어둡고 불평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그들의 마음을 살피며 조심조심 필요에 따라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 모습이 어쩌면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라카룸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걸 보면 마음이 착잡하단다. 사물함에 손가방을 넣고 신발을 바꿔 신는 환자나, 수술을 앞두고 화장을 하는 환자들을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고 한다. 과연 수술대에서 안전하게 내려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달 부산에 사는 사돈어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평소 건강하던 분이 건강검진에서 직장암 4기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상황이 급박하다보니 바로 입원을 하여 수술을 하게 되었고 수술과정에서 암은 급속도로 온 몸에 번져 나갔다.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운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가장을 잃은 유족들의 마음은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병상을 지키는 간호사들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고 있으니 담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먼 이국땅에 정착하면서 온갖 모험과 외로움을 각오한 분이다. 간호사의 길을 택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봉사적 신념이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밤이면 글을 쓰고 틈틈이 수필강의를 하면서도 간호사로서 철학이 뚜렷했다. 환자의 몸에 손을 댈 때는 하늘을 만진다는 심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간호사의 특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환자가 될 것이다. 언제든 나도 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감싸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려는 마음이 앞선다.

「그레이스 피어리어드(grace period)」는 간호현장의 체험을 독특한 통찰력으로 엮은 글이다. 곁에서 이야기하듯 소곤소곤 풀어내는 언어의 매력이 놀랍다.

어둡고 차갑게 기술되기 쉬운 병상기록을 우아하고 따뜻한 서사적 언어로 이끌어내고 있다. 그의 소박함과 세련미로 글 속의 정경을 그림처럼 묘사하여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감동과 가치를 대면하면서 경험한 힐링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녀는 지금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수필집은 임상일지를 쓰듯 생생한 병실의 현장기록이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간호전범(看護典範)이 될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인내심과 사명감에 박수를 보낸다.

이우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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