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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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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한 자락
  • 전민일보
  • 승인 2020.12.09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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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초겨울 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바람은 마른 아스팔트를 애무하듯 핥고 지나간다.

흩어진 가을의 잔해들이 거리구석으로 어지럽게 내몰리고 있다. 그 모습이 처처하고 처연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차가운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바람과 빗줄기가 한바탕 어우러져 춤을 춘다.

머리를 풀어 헤친 미친년 같은 빗방울이 곡예하듯 쏟아지면서 바람과 함께 뒤섞여 마른 아스팔트를 흥건히 적신다. 탁한 빗물은 이내 실개천을 이루며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렇게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까닭 모를 그리움이 엄습해온다. 도대체 누구를 향한 그리움의 발로일까. 보랏빛 안개로 피어있는 첫사랑의 초상인가. 아님 지난날의 애틋한 추억 때문인가.

세월이 내 청춘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세월은 청춘을 갉아 먹는 야수다. 때론 허송세월로 아까운 청춘을 흘러보낸 지난날이 아쉽고 억울하고 분하다.

다시 그리움이 빗물에 젖는다. 하염없이 젖는다. 비에 젖은 그리움은 한 가닥 실루엣이 되어 내 볼을 적신다. 비는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줘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비는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동시에 슬픔을 담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흘러간 세월을 불러모아 이별의 원인을 분석해 본다. 그러나 과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잊어야 한다. 세월 뒤편으로 사라진 젊은 날의 추억도, 그 누구를 사랑했던 기억도, 애증도 모두 비와 함께 흘려보낸다. 비란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뛰어난 역할을 하므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청승맞게 해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움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그리움이 있다. 더욱이 외로울 때는 사랑하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그 무엇보다도 절절하다. 그리움이란 단어는 참으로 애틋하고 가슴 아프게 하고 설레게도 한다.

“그리움이란 단어에선 비에 젖은 재스민 꽃향기가 물씬 풍긴다”고 말한 이해인 수녀를 생각해 본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 하는 것일까? 아님 보내드리려 해도 떠나지 않고 뇌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움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생기는 안타까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움이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아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 치밀어 오르는 마그마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친밀함과 그리움은 시간의 창조물이다. 우연 속에 놓인 관계를 향해 사랑, 혹은 운명이라는 축복을 보내는 것은 천사의 얼굴을 한 시간이다. 반면, 관계를 잠식하고 사랑을 부식시키는 것도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관계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도, 가장 강력한 적군도 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시간은 천사와 악마의 웃음을 모두 갖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비유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일상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이란 오로지 일상의 집적이며 일상은 시간이 부리는 변덕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닐까?

나이만큼 그리움이 온다고 했다. 그리움에도 나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움도 꼬박꼬박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속엔 나이만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렇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산들거리며 다가서는 바람의 노래 속에도 애틋한 그리움이 스며 있다.

마음이 허허로울 때는 스쳐 지나가는 그리움한 자락 붙들어 놓기도 쉽지 않다. 설혹 무리를 하여 앉혀 놓아도 얼음 깨지듯 바스락 깨어지기 일쑤고 흩날리는 재처럼 황량하다.

그리움이란 늘 그런 허상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리움이란 명사 자체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말이니 내 안에 내재된 낡은 흑백필름 같은 ‘스크래치’ 투성이의 존재일 뿐이다.

누군가를 지칭하여 그리움과 싸우기도 하지만 가끔은 특정인도 없이 그리움과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다. 애당초 내 앞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일지 모르나 딱히 누가 아니더라도 분명히 그런 잠재의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창밖에 비가 후드득 떨어지거나 아스팔트 위로 마구 굴러가는 낙엽을 바라보거나 할 때, 서성임의 마음들이 그런 것이다. 또 그런 ‘센티멘탈’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글도 되고 그림의 시발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영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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