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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공무원에서 진정한 시인으로 인생 2막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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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공무원에서 진정한 시인으로 인생 2막 열다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0.11.01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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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인생시계가 날로 길어지고 있다. 이제 60세에 환갑잔치를 성대히 여는 일은 꽤나 겸연쩍은 일이 돼버렸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관용어구로 굳어진 지도 오래다.

한국인이 특별한 사고 없이 노화로 인해 생명의 꽃이 스러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대수명은 80세를 훌쩍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것은 인생 계획을 세울 때 필수요소가 된지 오래다. 퇴직 후 새로운 일들에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지만 퇴직 전 ‘선물’처럼 자신의 다른 재능을 발굴해 꾸준히 진가를 드러낼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공직에 몸담다 퇴직 후 펜 끝에 힘을 담은 ‘시인’ 김철모씨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전북시협 문학강의를 하는 김철모 시인
전북시협 문학강의를 하는 김철모 시인

 

언제나 반듯한 정장차림과 더 반듯한 헤어스타일, 그리고 깔끔한 무테안경을 쓰고 전북의 도정을 살펴왔던 김철모 전북도청 정책기획관은 이제 ‘김철모 시인’으로 제2의 삶을 살뜰히 살고 있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엔 맑은 미소와 함께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 왔으니 요즘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살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지난해 7월 40년간의 공직생활에서 물러난 이후 31년간 희노애락을 견뎌냈던 전주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산 좋고 물 좋은 정읍 고부의 경덕재(經德齋)에 새 터전을 마련한 김 시인은 아직 불편한게 많긴 해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도회지 생활을 하다가 시골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진 않았지만 집사람이 원해 큰 고민 없이 결정했습니다. 새소리와 풍경소리, 맑은 공기 뿐 아니라 한발짝만 떼면 등산로가 펼쳐지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저 좋기만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몸에 벤 습관은 ‘공무원’ 그 자체라며 껄껄 웃는 김 시인은 자신의 일상의 소소한 면을 공개하며 행복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현직 때 습관이 이어져서 6시 반이면 눈이 떠지곤 합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리집에 살고 있는 길양이들에게 아침을 챙겨주는 일입니다”라고 운을 뗀 김 시인은 객식구에서 진짜 식구가 된 다섯 마리 길냥이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밭일에도 따라나서는 길양이가 강아지처럼 살갑다며 입꼬리에 연신 행복을 담았다.

오랜 공직생활은 몸을 쓸 일이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텃밭을 가꿔 거기서 수확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김 시인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그간 해보고 싶었던 취미생활도 과감히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멀리는 어려워도 집사람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틈틈이 기타 연습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실력은 초보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만요.”

김철모 시인은 공무원으로서의 공적이 뚜렷해 후회라곤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그 역시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 한 시집을 통해 ‘돼지해에 태어나 돼지해에 야인으로 돌아간다’고 고백한 것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공직사회에 대한 애정과 회한이 모두 담긴 말이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땐 직장이 제 전부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집안 살림 하는 것도 모두 아내에게 미루는 ‘무책임한 가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라는 미안함이 있긴 하지만 이런 아빠를 두고도 무탈히 장성해 준 두 아들과 누구보다 가정을 지탱해 준 아내를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철모 시인을 있게 한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
김철모 시인을 있게 한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

 

40년이라는 시간동안 공직생활에 천착한 김 시인에게 시를 쓰는 시간은 불가능의 영영이면서도 그를 살리는 시간이었다. 앞도, 뒤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분주하게 공직을 수행하면서 문득 ‘내가 지금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때가 공직생활 20년을 꽉 채운 때였다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 저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며 습작을 시작했던 김 시인은 자작시를 쓰면서 이미 시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자신만의 약속을 했다.

그리고 2007년, 한국문학세상에서 주최하는 ‘설중매문학상 신인상’에 당선이 되면서 시는 운명이 됐다.

주변에서 공직을 수행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동료와 선후배들을 보면서 자신 역시 그 상황에서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근원을 ‘시’라고 말한 김 시인은 시를 쓰며 스트레스가 해소됐고, 시를 쓰려면 소재를 찾아야 하니 여행을 다니고 촬영을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를 쓰다보면 속이 시원해짐을 느낍니다. 종교에서 통성기도를 하거나 고해성사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저에게는 시를 쓸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는 결국 자신의 속내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이 삶의 윤활유가 되어 삶의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지요.”

분초를 다투는 공직생활 중에도 시집을 다섯 권이나 낸 ‘부지런한’ 김 시인은 꾸준한 시작(詩作)의 원천을 자신의 공감하는 능력 안에서 찾았다.

“시는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보는 관찰력과 공감, 영감, 상상력이 시를 써내려가기 위한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죠. 특히 자신을 투자하지 않고, 시간을 쪼개지 않으면 글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시의 영감을 찾아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야 하는 김 시인에게 지금의 상황은 다소 암울할 수 밖에 없을 터.

코로나19는 전세계의 발목을 잡고 시인의 발걸음에도 작은 족쇄를 채웠다. 하지만 초유의 사태도 시인에겐 시의 소재가 됐다.

시인은 최근 쓴 시 중 ‘부질없는 욕심’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죽비를 드는 심정으로 써내려갔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자신만이 최고고 자신만이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처럼 요란법석을 떠는 정치인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더욱 답답해지곤 했습니다. 언제쯤이면 욕심을 내려놓고 국민의 가슴을 뻥 뚫어줄지 걱정입니다.”

전북시협 문인들과 함께하는 강의
전북시협 문인들과 함께하는 강의

 

서정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의 시를 써왔던 김 시인은 이제 시국 앞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강한 목소리를 내는 시인으로 한 뼘 더 성장했다. 이런 그가 앞으로 써내려갈 글이 궁금해졌다.

“이젠 공직을 떠난지도 1년을 넘어선 만큼 지금의 서정적 시풍을 유지하면서도 민중의 목소리도 담아내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글쟁이’가 남은 인생동안 적어 내려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공직에 있을 땐 누구보다 도민들을 위한 정책수행에 앞장섰고, 공직을 떠나서도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김철모 시인이 함축해 나갈 다음 언어가 궁금해진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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