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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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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생존법
  • 전민일보
  • 승인 2020.09.2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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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이 명퇴를 했다. 국세청장 최종 후보 2인에 올라갔던 친구다. 미관말직인 내겐 아직 여유가 남아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기엔 충분하다. 나도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학벌과 돈, 명예 그리고 삶 그 자체까지도 들어가는 나이와 더불어 의미가 변한다. 은퇴하면 누구에게나 아저씨 아줌마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대면해야 할 노후의 삶. 허무주의의 끝자락에서 탄생한 ‘러시안 룰렛’만큼이나 한줄기 연기와 같은 인생이라 말한다면 과도한 것일까. 문득 어느 시절, 설 풍경이 떠오른다.

종가댁, 교리댁, 영감댁, 진안댁, 승부댁 그리고 검진댁에 세배를 갔다. 집안 최고 어른이신 검진댁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셨다.

일유제 장태수 선생의 친손자이시고 일송 장현식 선생을 조카로 두신 증조할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세배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방에서 느꼈던 아련함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존엄한 노후의 모습이었다.

은퇴와 노후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것의 행태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부분에서는 동일하다. 농경시대 노인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자산이었다. 3만년 이전까지 지구상에는 복수의 호모 종이 존재했다. 그런데 왜 그 이후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고도 외로운 생존자가 되었을까.

현생 인류와 마지막까지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일까. 인간에게서 전쟁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 대략 1만 5천 년 전쯤 부터라고 하니 두 종간에 물리적 대결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론(異論)이 있지만 두뇌의 용량도 더 컸다는 그들은 신체적 조건에서도 사피엔스를 능가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멸종한 것일까.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 후손의 양육속도도 훨씬 느렸다. 다시 말하면 아기가 성장해 성인이 되기까지 보살핌의 시간을 훨씬 많이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그 이유가 사피엔스 생존 비결이었다.

오랜 양육은 생존과 사회화를 위한 학습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노인이 있었다.

문자가 없던 그 시대 생존을 위한 앎의 전승은 노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노인은 그 시대의 네이버이자 슈퍼컴퓨터였다. 노인이 가진 지혜는 사회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지성이었다.

앞선 경험과 삶의 지혜를 전승해 줄 노인이 없는 사회는 변화와 도전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이 가진 고민이었다. 그들에겐 사피엔스가 가지고 있던 노인의 지혜가 없었다. 후손을 빠른 시간에 양육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노인의 지혜를 전승해줄 시간이 네안데르탈인에겐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사피엔스가 생존한 이유다.

중국 삼대(三代)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노인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지혜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여든 살이 된 이에게는 달마다 안부를 묻고, 아흔 살이 된 이에게는 천자가 물을 일이 있으면 그의 집으로 직접 가되 진귀한 음식을 가지고 간다.”는 고존 진종(告存珍從)이나 “노인에게 좋은 말을 해 주길 청하는 것과 노인의 돈후(敦厚)한 덕행을 기록한다.”는 걸언 돈사(乞言惇史)가 바로 그런 인식을 대표한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을 일으킨 서인(西人) 세력이 남인(南人)의 이원익(李元翼)을 영의정으로 추대한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이원익은 폐주(廢主)가 된 광해군(光海君)을 서슬 퍼런 칼날속에서 끝까지 지켜준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에게 노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후대의 삶을 인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인식을 기대한다면 무리수인가. 어린 손자도 더 이상 할아버지에게 묻지 않는다. 그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에 비하면 할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의 지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는 사피엔스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그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온 주인공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대가 노인의 위치에 온다는 사실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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