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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죽음, 그것이 슬픈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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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죽음, 그것이 슬픈 이유는
  • 전민일보
  • 승인 2020.03.2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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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신성하다. 하지만 종이를 가득 실은 리어커를 힘들게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은 슬프다. 그것은 내가 필리핀에서 만난 어린이의 모습을 봤을 때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열 살이 겨우 넘은 아이를 보고 옆에 있던 엔지니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저 육중한 트럭을 운전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트럭 운전이 아니라 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필리핀에서 만났던 사람 중에 자신의 조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노인에겐 삶의 여유, 어린이에겐 배우고 놀 수 있는 천부의 권리가 있다.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삶의 도구로서의 노동은 결코 신성할 수 없다. 농업인에게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내가 간혹 곤혹스러운 것도 그것과 무관치 않다. 오늘 받은 한통의 전화도 그렇다.

지난 해 12월 하우스에 심은 감자가 심각하게 망가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10년 넘게 감자만 심었고 이제 나이도 들어 다른 작물은 재배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출장을 나간 상태여서 현장 사진과 감자 식물체를 가져와달라고 부탁 했다.

말기 암을 진단하는 의사의 심정이 그럴까. 사진과 실물을 본 순간 안타까운 탄식만 나왔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감자는 망가져있었다. 역병이었다. 궁금했다.

감자 농사를 10년 넘게 지으신 분이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을까. 조금만 일찍 내게 왔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을 텐데. 역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기온이 낮은 상태에서 과습 되지 않도록 수분관리만 제대로 해줬다면 건강하게 자랐을 감자인데. 감자가 그 지경이 된 모습을 보며 슬펐던 것은 감자의 아픔에 대한 연민과 함께 거기에 농업인의 눈물과 회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르신에게는 말 그대로 자식 같은 감자 아니던가. 그는 여전히 돌아오는 겨울에도 감자를 심겠다고 했다.

감자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감자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 보여주는 지혜는 인간의 진화 방식과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다.

어쩌면 늙어가고 죽음에 이르는 방식에 있어서는 감자가 인간에 비해 더 깊은 품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자에겐 아동학대나 노인학대가 없다. 또한 노년이 주는 원치 않는 고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역(周易)>에 이런 말이 나온다.

原始反終(원시반종) 故知死生之說(고지사생지설)

“만물의 시초를 고찰하여 삶의 원리를 알고, 만물의 마지막을 궁구하여 죽음의 원리를 안다.” 드넓은 우주의 시작과 형상의 규모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상의 모래알 보다 많다는 별의 개수도 놀랍지만 정말 경이로운 것은 그 별들을 품고 있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공간이다. 그런 우주에도 종말이 있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마지막을 맞이할까. 최립(崔?)은 <간이집(簡易集)>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곡(荷谷) 허 학사(許學士)가 먼저 지은 글 중에 ‘삶도 삶이 아니요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生非生死非死)’라는 말이 있었고, 소재(蘇齋) 노 상공(盧相公)이 뒤에 지은 글 중에 ‘삶도 죽음이요 죽음도 삶이다.(生亦死死亦生)”

교묘한 어휘의 희롱인가. 그럼에도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숙주는 박쥐라고 한다. 인간을 괴롭힌 많은 질병이 동물로부터 유래한다. 그것은 미래에도 인간에게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감자는 자신의 병을 결코 사람에게 전이시키지 않는다. 그것이 역병이건 치명적인 바이러스건 감자만 위협할 뿐 인간에겐 아무런 해가 없다. 그것은 다른 모든 동물에게도 해당된다.

만일 인간에게 치명적인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식물체로부터 감염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감자의 죽음은 내게 하나의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내가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을.

겨울철 하우스 감자에게 과도한 물을 공급한 것은 감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연로한 농업인에겐 잘못이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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