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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추방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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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추방과 민주주의
  • 전민일보
  • 승인 2020.02.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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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화의 원형은 그리스에 있다. 도시건축은 물론 음악, 미술, 철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리스적이다.

이를 두고 문화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모방이라고 빈축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얼마나 원형에 충실했는가로 예술성을 논하다보니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하더라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문화의 한 형태가 나타나면 이삼백년을 유지했다. 이제는 문화의 양상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를 이뤄 어디에 가도 유럽풍의 건축과 문화와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 중 아직도 유럽풍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화가 있다. 민주주의다.

동양이 황제의 궁궐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축하고 절대적 왕권을 휘두르던 시절 그리스에서는 민주주의 제도를 실행하고 있었다.

도심의 고지에 신전(神殿)을 중심으로 한 아크로폴리스를 세우고 그 아래에 아고라(agora)라는 광장을 열어 시민의 사교와 소통을 위한 문화의 공간으로 이용했다.

그 중 민회(民會)를 통해 시민의 뜻을 모아 정책에 반영하고 재판을 하는 정치와 기능이 중요했다. 아고라에서의 재판은 본인의 변명이나 변호인의 변론 없이 민의의 따라 결정하는 단심제가 문제였으나 군주의 결정에 따르는 동양보다는 훨씬 민주적이었다.

당시 그리스에는 도편추방(陶片追放)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민주정신을 해하거나 참주(僭主)가 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을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기록해 일정한 수가 나오면 국외로 추방하는 재판이었다.

인민재판과도 비슷했지만 민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점차 정적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악용해 소신이 있는 지도자나 정치인은 광장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광장공포증’의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라로 용어가 나타났다. 그리스의 명예와 민주주의 정신을 지키려는 도편추방이 동양의 군주권처럼 변질 돼 빛을 잃은 것이다. 광화문 앞의 세종로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유럽의 광장을 적용한 것이다.

그곳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다양한 목소리의 집회도 그리스 아고라 문화의 재현을 보는 것 같다. 그 많은 민중에게 도편추방의 재판을 적용하면 서울에 남아 있을 정치인은 몇 명이나 될까?

한국 사회가 서구적인 문물과 제도를 닮아가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사는 사회를 영과 육, 정신과 물질, 선과 악의 양대 축으로 가른 플라톤의 이원론까지 본받고 있다.

우군이 아니면 적군으로 양분된 이원론적 현상은 국가 발전을 위한 정쟁이 아니라 권력쟁취를 위한 정쟁으로 상대방을 무참히 죽였던 조선시대의 당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인의 순수한 정감과 예를 존중하던 사회성이 소멸되고 자기 소신만을 중시하는 확신정치인으로 변질됐다. 그래서 정치 예기만 하면 말다툼이 벌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가장 혐오하면서도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모순을 가장 반기고 가장 즐기는 화제로 바꾸기 위한 아고라의 문화로 바꾸면 어떨까.

강기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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